[비단구두] 임금체불 피소 당한 여균동 감독
[한겨레] 2005년 8월 26일
최근 <친절한 금자씨> <웰컴 투 동막골> 등 몇 편의 한국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며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영화가를 들쑤시던 한국 위기론이 쑥 들어갔다. 정말 좋아진 걸까. 장미꽃 향기 진동하는 그 표면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세상 밖으로>(1994)로 데뷔해 충무로에서 5편의 상업영화를 만들어 온 여균동(47) 감독. 그는 최근 독립제작 방식으로 디지털 영화 <비단구두 사가지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개봉할 극장을 구하지 못해 관객과 만날 일이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일부 스태프가 임금체불 때문에 여 감독이 만든 오리영화사를 상대로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냈다. 제작자로 가장 명예롭지 못할 이 소송이 불과 1억원 미만의 돈이 없어 생긴 일이라니, 평균 제작비가 30억원이 넘어간 요즘 충무로의 풍경을 떠올리면 씁쓸해진다.
실향민 소재 메이저들 시큰둥, 배급사 못찾아 개봉 멀기만
“설경구·송강호 기다리지만 말고 작은영화로 양질 인력 양성을”
“꼭 독립제작 방식을 고수했던 건 아닌데 실향민이라는 소재나 스타 캐스팅을 하지 않는 이유로 메이저에서 별 관심을 안 보이더라구요. 내 생각도 메이저적인 접근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아 영진위 공모작 당선금 3억원으로 촬영을 시작했죠. 계산해보니까 고소고발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웃음)의 최저 제작비가 5억원 정도인데 2억원 펀딩 안 되겠냐는 생각이었어요. 참 순진했던 거죠.” 4년 전부터 구상해 올 초 촬영을 마친 <비단구두 사가지고>는 흥행에 계속 실패하는 영화감독이 사채업자의 협박으로 치매에 걸린 업자의 실향민 아버지를 위해 가짜 북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휑한 산골을 찾아 엉성하게 북한식 입간판을 걸어놓고 기념사진 한 컷 찍는 것으로 노인을 속이려는 이 여정은 갖가지 방해꾼들로 난항을 겪지만 마지못해 노인과 함께 가던 감독과 사채업자의 ‘똘마니’ 성철은 갈수록 이 ‘영화적’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치매노인이나 감독이나 깡패나 모두 뿌리를 잃은 실향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너무 고전적으로 생각하는 건지 몰라도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내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 꿈꿨던 것이 소멸돼가는 느낌이에요.” 최근 그는 독립영화 지원정책 전문가가 된 것 같다. 독립영화의 위기를 “내가 겪고 있기 때문에 더 ‘빡세게’ 느끼는 것 같다”는 그의 머릿속에는 찍어만 놓고 후반작업 비용이 없거나 극장을 못 잡아 묻혀 있는 독립영화 개봉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쌓이고 있다.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일종의 질문인데 이 질문이 제대로 된 건지, 관객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피드백이 없을 때 감독은 점점 할 말을 잃게 되므로” 독립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5억원으로 <비단구두…>를 완성했을 때 그가 계산한 손익분기점은 4만5천명. 100만명 관객 동원도 ‘그럭저럭’의 결과로 평가받는 충무로에서는 콧바람이 나올 숫자지만, 최근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관객 2만명은 상업영화 1000만명에 버금가는 ‘꿈의 기록’이다. 1000만 관객 동원도 중요하지만 영화시장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5~10억원 제작비 규모의 대안적 영화들이 한해 20~30편 정도는 개봉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단지 문화적 다양성 같은 명분 때문이 아니예요. 이를테면 작은 영화를 통해 양질의 인력도 키워질 수 있는 거죠. 언제까지 설경구, 송강호만 기다리고 있을 건가요. 개런티 높다고 흥분하기 전에 제2의 설경구나 송강호 10명을 키우면 그만큼 주류 영화계에도 보탬이 되는 거죠.”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요즘이지만 최근 새로운 시나리오를 한편 완성했다. “모차르트의 환생 같은 음악영화로 <아마데우스> 속편 비슷한 이야기”라고만 슬쩍 귀띔을 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양예나 인턴기자 yenais@gmail.com
그랬던 일이 꽤 오래전의 일이라니... 이렇게 저예산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게 넘 기뻐요!! ^^*
이번 작품도 기대가 많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