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스트레스, 그거 보통 끔찍한 게 아니야"
[프레시안 2005-08-20 15:23]
붓 한자루 화폭에 던져 세상을 그려보이던 화가가 온몸을 직접 영화폭에 던지니 그대로 실향민의 아픔이 스며든 그림이 됐다.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 계열로서 사회모순을 풍자하는 '이발소 그림'으로 유명했고 요즘은 경기도 양평에 칩거하며 전통 지리의식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하는 데에 노력해 온 중견화가 민정기(56) 화백이 여균동 감독의 신작 영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의 주인공 실향민 노인으로 열연해서 화제다. 전업업화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치매노인' 역할을 훌륭히 해낸 민정기 화백은 사실 연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재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1968년부터 70년까지 연극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최근 국회에서 첫 시사회를 가진 '비단구두…'의 내용은 이렇다. 3류 영화감독 만수(최덕문)가 사채업자에게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는 그 돈을 갚는 대신 치매에 걸린 아버지 배 영감(민정기)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제안한다. 배 영감의 소원은 자신의 고향인 북쪽의 개마고원에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만수가 사채업자의 부하인 성철(이성민)과 함께 배 영감을 데리고 '북한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떠난다. 남한을 북한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각종 장치와 배 영감이 거짓말을 알아챌까봐 만수와 성철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시종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 "가자!"를 반복하며 봇짐을 끌어 안은 채 허공만 바라보는 배 영감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균동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민 화백의 캐스팅 이유'를 "민정기 화백이 예전에 연극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에서 난장이 역할을 잘 했던 기억도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기용하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는 말로 설명했다. 여기에 "민정기 화백도 기대에 맞게 연기를 잘했다"고 여 감독을 덧붙였다.
국회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민정기 화백도 '영화로의 외출'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것으로 보였다.
[img1]-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본 소감은?
"2월에 촬영한 뒤 그 동안 (편집을) 진행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도 완성된 영화는 시사회에서 처음 봤다. 긴장도가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다."
-만족한다는 얘기인가?
"(어색하게) 하하하."
-대학교 연극반 활동 이후 연기가 처음이었나? 출연을 수락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대학 졸업 후 OB공연 때 불려가서 한번 잠깐 한 적이 있다. 출연 계기는… 그게 사실은 제가 마침 작년 10월경에 작품전시회 하나를 끝내고 쉬고 있었는데 여 감독이 어떻게 알고 화실로 찾아와서 '한번 해보시라'고 아주 강력하게 얘기했다. (웃음) 처음에는 단역인 줄 알고 쉬는 참이기도 해서 '한번 해봅시다' 하고 시작했다. 또 이번 영화에 '조연출'역으로 나온 애가 제 작은 애이기도 해서… 걔가 어떻게 일하나 하는 것도 보고, 같이 출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해서 격려 겸 출연 결심을 했다."
-치매에 걸린 상태에서도 계속 "가자!"라고 외치며 고향 가는 문제에 관한 한 또렷한 의식을 가진 '배영감'의 역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여 감독과 함게 고령 치매환자들이 계시는 곳을 두어 번 방문했다. 서너 시간 같이 있으면서 관찰도 좀 했다. 고령이고 심각할 정도로 병이 진행된 노인들은 대개 자폐적이고 우울하고 거울보고 혼자 같은 얘기를 반복하곤 하더라. 연기 하는 데에 그런 것들을 참고했다. 배 영감의 역할을 아주 섬세하게 그리진 못하더라도 이럴 땐 이렇게 자폐적이고 혼자 독단적으로 가는 거겠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했다. 한편으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역할 자체가 미쳤으니깐…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수도 있다(웃음)."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북한 사투리 하는 게 어려웠다. 그거 아주 치명적이더라. 여 감독이 처음에는 따로 사투리를 익힌 다음에 말 부분은 나중에 덧붙이자고 얘기할 정도였다. 다행히 여 감독이 관련 자료를 줘서 연습할 수 있었다. 그래도 거기다가 감정까지 넣으면서 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 전 큰 부담이 없었다. 여 감독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같이 움직여보자고 해서 그렇게 했고 재밌었다."
-영화는 실향민의 아픔을 계몽적이지 않은 화법으로 자연스레 전달하고 있다. 분단의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방식의 전달이 인상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실향민을 연기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몸 담고 있는 그림판의 후배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아버지가 북쪽에서 내려온 뒤 그 쪽과 단절되어버리는 바람에 다시는 고향과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발산할 길을 찾지 못해 어머니를 구타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분단에 의한 이산가족'이라는 것을 나는 상상만 해 왔지만 사실 그게 보통 끔찍한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역할을 통해 절절히 느꼈다."
-또다시 연기 제의가 들어오면 응할 용의가 있나?
"뭘 또 하겠나(웃음). 이 영화는 지난 1~2월 가장 추울 때 인천, 남양주, 홍천, 동해 등 곳곳을 다니며 힙겹게 촬영했다. 워낙 저예산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한 영화라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잘 진행되어서 영화관 상영도 이뤄지고 미비하게 진행됐던 다른 부분들도 모두 잘 처리됐으면 좋겠다."
최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