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동의 귀환 <비단구두>
[필름 2.0 2006-06-13 20:00]
[img1]여균동 감독이 <미인> 이후 6년 간의 침묵을 깨고 완성한 <비단구두>가 공개됐다. 13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언론시사회를 연 <비단구두>는 그의 데뷔작 <세상 밖으로>와 여러 모로 닮았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위해 가짜 방북기를 만든다는 내용의 <비단구두>는 <세상 밖으로>에서 배우 문성근과 이경영에게 “빨리 가자우”하면서 팔을 잡아끌던 할머니의 못다한 이야기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두 작품 다 실향민이나 남북분단 문제가 소재로 사용됐으나 여균동 감독은 직접적으로 통일 문제를 건드리기 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금기를 북으로 상징화"해 우리 사회의 금기의 문제와 탈주의 욕망을 따뜻하게 보듬어 낸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뭐든 다 할 수 있지 않아?” 어느 날 영화 감독 박만수(최덕문)는 사채업자로부터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가짜 방북기를 연출해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영화 흥행 실패로 떠안게 된 빚을 갚기 위해 박만수는 조폭 두목의 아버지 배영감(민정기)의 고향 개마고원과 유사한 세트로 짓고 배우 섭외에 나선다. 얼핏 <간 큰 가족>을 연상시키지만 <비단구두>는 남북 문제를 넘어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휴먼 드라마로 엮어낸다. 북으로 가는 가짜 여행길에 오른 영화 감독과 스탭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운 고향땅을 애타게 찾는 치매 노인. 이들은 길 위에서 맘껏 소리치고 싸우며 서로에 대한 따뜻한 온정을 찾아간다.
<비단구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여균동 감독은 “영토를 합치거나 같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에서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은 것 같다”며 “<비단 구두>를 통해 남북 분단 상황을 넘어 분단과 통일에 대한 다른 상상을 해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날 처음으로 영화를 보게 됐다는 성철 역의 이성민은 “촬영할 때 몰랐는데 완성된 영화로 보니 전체 호흡을 읽지 못한 게 너무 드러난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여균동 감독은 “오랜만에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느낌이다”며 “힘들게 촬영해준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연극계에서 이름을 알려 온 최덕문은 영화 실패를 탓하는 무기력한 감독에서 “영화는 목숨 걸고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조금씩 알아가는 영화감독 만수 역을 매끄럽게 그려낸다. 특히, 배영감 역의 민정기는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지평을 넓힌 미술가로 프로 배우들에 기죽지 않는 연륜 있는 연기를 펼쳐내 눈길을 끌었다. 3억 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비단구두>는 지난 해 8월에 완성됐으나 그동안 개봉관을 잡지 못해 난항을 겪어 왔다. 6월 22일 개봉. 제작/배급 오리영화사.
After Screening
실향민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 꾸며낸 가짜 북한 방문기라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몇몇 영화를 연상시키고, 실향민, 영화감독, 조직폭력배 등 각 인물 캐릭터는 당황스러울 만큼 뻔하다. 그럼에도 아마추어를 포함한 배우들의 독특한 융합은 영화를 뻔하지 않게 끌고 간다. 황세원(국민일보 기자)
실향민인 아버지를 위해 통일을 연출한다는 점, 가짜 통일 만들기에 조폭이 동참한다는 점, 영화 곳곳 유머를 가미시킨다는 점 등 여러모로 2005년에 개봉한 <간큰가족>과 닮아 있다. 물론 <간큰가족>과 스타일 자체부터가 다른 영화지만 <비단구두>는 <간큰가족>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넘어서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고향을 향한 배노인의 그리움과 억지로 이룬 통일을 통해 비로소 깨닫는 인간적인 정, 그리고 거짓말을 고수하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의 유머러스함이 끈끈하게 뭉뚱그려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각각의 상황에 밀착되어야 하는 캐릭터들이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어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 나하나(씨네서울 기자)
박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