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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생 백전노장 임재영 조명기사부터 스물다섯살 터울의 1978년생 강동균 현장편집기사까지 현장영화인 스무명이 마음에 품었던 책을 꺼냈다. 경험과 연령차는 있지만 이들은 공히 장편영화 3편 이상을 작업한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노련한 기사급 스탭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작업하고 있거나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그들에게 책을 추천받고 자필 원고를 청탁했다. 그 결과 영화작업에 실용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전문도서에서 예술적 영감을 주는 화집이나 산문집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맞은 다양한 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영화인 20인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직접 써내려간 추천사와 함께 그들이 오랫동안 탐독했던 책 스무권의 첫 페이지를 이제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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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그려낸 인간의 얼굴<존 버거의 글로 쓰는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열화당 펴냄
수전 손탁은 이렇게 존 버거를 치켜세웠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의 작가들 중에서 존 버거에 견줄 만한 작가는 없다. 로렌스 이후로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책임감과 감각적인 세계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데 존 버거만큼 성공한 작가는 없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꼽을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저명한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사진이론가, 좌파 정치 이론가 등 모든 분야에서 최상급의 역할을 보여준다. 그는 논쟁할 때 열정과 사나움을 가지고 분노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의 글은 섬세하고 직관적이며 문장이 지닌 음악성은 울림을 남긴다.
<존 버거의 글로 쓰는 사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존 버거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시각적인 문체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그를 분석하지 않는다. 그렇다. 관찰하는 눈이 있을 뿐이다. 너무도 순수하고 성실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인물과 상황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데 모든 시각적, 음악적, 후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 인물들을 대할 때마다 한장의 사진에서 얻는 감흥과 비슷한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읽는 이가 각자 자신만의 한장의 흑백사진을 찍어내게 만든다. 때로 그것은 그들의 주름과 한숨, 조롱이 담긴 표정의 클로즈업일 때도 있고, 런던광장에서 병든 비둘기를 돌보고 있는 미국산 운동화를 신은 노숙자 여인의 풀숏이기도 하다. 읽는 이는 그 모습에 감춰진 비밀을 탐구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가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의 근심어린 행복한 시선이 너무도 따뜻해서 종종 눈물이 난다. 마치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비밀스러운 제안을 하는 듯하다. 그가 묘사하는 인물들을 연민하고 사랑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결코 직접적으로 그런 투로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모든 문장, 조화, 묘사 속에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진실을 갈구하는 젊은 관찰자의 열정, 그리고 세상의 숨겨진 구조를 파악해내려는 지식인의 예리함을 동시에 지닌 훌륭한 작가다. 그의 이런 시선과 방식을 진정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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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 보기의 매력에 제대로 빠지다<르네 마그리트> 수지 개블릭 지음/ 천수원 옮김/ 시공사 펴냄
어릴 적 대가족의 품에서 자랐지만 유난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항아리 아줌마가 나에게 걸어와 말을 건네거나 요술봉을 흔들면 방 안이 궁전으로 변한다는 등의 상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요술쟁이로 분한 내가 골목 어귀에 앉아 즐기던 마법은 사람을 난쟁이로 만드는 일이었다. 한쪽 눈을 감고 손을 들어 감지 않은 눈 가까이로 당겨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바닥 높이와 잘 맞추면 행인은 금세 난쟁이로 변했다. 같은 방법으로 돌멩이 위에 집을 얹거나 먹던 사과 위로 똥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게 했다. 이런 유치한 장난은 시간이 흘러 친구와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된 뒤에는 자연스레 잊혀졌다. 그런데 사춘기를 막 지날 무렵 미대를 다니던 언니의 책상 위에서 어릴 적 내가 즐기던 그 유치한 놀이를 그림으로 그려낸 책을 발견했다. 표지에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처음 만난 마그리트 화집은 장난 같은 그림투성이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장난을 하거나 비슷한 스케치를 늘어놓고는 이름만 다르게 붙이는 등 그것은 엉성한 화집의 전형이었다. 다만 바다 위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바위성을 표현한 그림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고흐의 불꽃 같은 그림 옆에는 나란히 놓일 수도 없고 다시 펼쳐보지 않아도 될 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그리트와의 인연은 오래 지속됐다. 미대에 입학한 뒤 미술사 시간에 초현실주의를 강변하던 선생님이 보여준 슬라이드 화면에는 바로 그 유치한 그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여전히 마그리트의 그림은 나에게는 에곤 실러나 구스타프 클림트보다는 별반 매력없이 느껴졌다. 달라진 것은 예전보다는 훨씬 묘사력이 있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 묘사력을 왜 저렇게 쓸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가까운 자리에 마그리트의 화집을 두고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게 됐다. 몇년 뒤 르네 마그리트를 다시 떠올린 건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였다. <매트릭스>와 마그리트의 그림은 왠지 모르게 닮았다. <매트릭스>를 보며 느낀 현재와 실재성에 대한 화두는 내던졌던 마그리트의 화집을 진지하게 다시 집어들게 했다. 그리고 발칙한 비틀어 보기와 삶의 고정관념에 대한 무한한 반문을 제기하는 마그리트 그림의 매력에 나는 제대로 빠져들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지금은 그의 그림을 탐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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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찌르는 선배 프로듀서의 말씀<만추, 이만희> 우리 영화를 위한 대화 모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영화감독과 프로듀서들이 영화제작 체험에 관하여 직접 쓴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수아 트뤼포, 로저 코먼, 로버트 로드리게즈, 시드니 루멧, 크리스틴 바숑 등이 직접 쓴 책들이 그것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DVD에 메이킹 비디오들이 수록되어 있어 이런 유의 책들을 대신하는 자료들이 많아졌지만,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이들이 제작현장과 비즈니스계에서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뇌에 찬 글들의 가치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구하게 된 <만추, 이만희>는 이런 맥락에서 나를 사로잡았으며, 게다가 ‘앞으로 영화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물론 해답까지 주지는 않는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한국 영화사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문헌상으로 복원하는 의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제작자 호현찬, 촬영감독 서정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과 백결, 배우 신성일과 문정숙, 윤정희,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딸인 영화배우 이혜영 등의 인터뷰와 젊은 영화평론가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이만희 감독에 관한 회고전적 책이라기보다 그 시대에 영화를 만들었던 제작자, 스탭, 배우들이 회상하며 함께 쓰는 제작일지 성격을 띠고 있다. ‘제작자 킬러’로 정평이 난 이만희 감독의 성깔과 실력을 존중하며, 가산을 탕진해가면서까지 만들어내고야 마는 제작자 호현찬 선생의 집념에 감동받게 되고, ‘대사가 없는 영화 한번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던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선생의 창의적 연대감에 감탄하게 된다. 실패한 가장이었지만 성공한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를 재해석하는 배우 이혜영의 인터뷰도 묘한 감흥을 준다. “저의 제작자로서의 신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 영화는 실패하지 않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좋으면 관객이 든다는 거죠”라는 호현찬 선생의 말씀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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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향연<대부> 완역본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늘봄 펴냄
영화 <대부>를 극장에서 본 것은 아마도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그 영화를 속속들이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라는 것이 있고, 그곳에서는 매우 멋지면서도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리라는 느낌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본 <대부>는 전율할 만한 영화였다. 그것은 ‘비우호적인 진실’을 지그시 응시하는 영화였다. <대부>가 유행시킨 관용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면 ‘거절할 수 없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이 영화는 마리오 푸조의 밀리언셀러를 각색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그 원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던가? 내 기억 속의 소설 <대부>는 전부 날라리 번역 아니면 제멋대로 편집되고 윤색을 덧붙인 불량품들뿐이다. 지금도 나는 어느 유수한 출판사에서 펴낸 <대부2>라는 소설을 보유하고 있는데, 어이없게도 영화 <대부2>를 그저 ‘소설적 문체’로 바꾸어 얼기설기 엮어놓은 책이다. 이쯤 되면 ‘해적판’도 아니고 ‘해괴한 변종 창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최근에나마 길벗출판사에서 저작권자인 마리오 푸조의 유족과 정식계약을 맺고 펴낸 완역본 <대부>의 출간은 실로 경하할 만한 일이다. 완역본 <대부>는 내가 아마도 서른번 정도는 보았을 영화 <대부>의 관극 체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각색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설 <대부>를 탐독해보라. 캐릭터들의 백과사전을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설 <대부>를 품에 안으라. <대부>는 서양 범죄학의 <삼국지>이며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의 각축장이다. 나는 <대부>를 보면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고 <대부>를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지독한 슬픔의 대사는 이것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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