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1일자로 공식출범한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www.scenariomarket.or.kr)이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는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시나리오마켓 운영위원회' 말고도 다양한 위원회들이 존재하는데, 그 어떤 위원회도 시나리오마켓 운영위원회만큼 눈에 뚜렷이 보이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혹은 그 탓인지...제2기 운영위원회는 그대로 연임되어 제3기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제3기 운영위원회의 임기는 2007년 8월 31일까지입니다.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은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박광수 감독님이 위원장으로 있는 '아시아필름마켓'(AFM)의 프로그램들 중에 하나를 맡아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의 피칭 혹은 프리젠테이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저는 여지껏 단 한번도 부산영화제에 참가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갑니다. 왜?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을 홍보하러...그만큼 제가 애착과 의지를 갖고 있는 사업입니다.
향후 한국영화시나리오마켓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이곳을 통해 배출된 작가(분기별 창작지원금을 수상한)들 역시 보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향유하게 될 겁니다. 올해 부산영화제 AFM에서도 창작지원금 수상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피칭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내년에는 정말 멋진 '시나리오마켓 부스'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연말이 되면 1년 동안 마켓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작가들을 한 데 모아 공청회나 세미나 같은 것도 진행해보려 합니다.
한국영화시나티오마켓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저작권문화]에서 원고청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운영위원장이니 제가 써봤자 '자화자찬' 밖에 안 될 것 같아서 지난 2006년 2/4분기 대상 수상작가인 이정선 님에게로 기회를 넘겼습니다. 이정선 작가는 시상식 때 처음 봤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저를 알 뿐더러 단국대학교 영화학과 재학시절 제게 수업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어찌되었건 아주 반가왔습니다...아래는 이정선 님이 [저작권문화]에 기고한 글의 전문입니다.
시나리오 일일장 시대를 연 시나리오 마켓
이정선 (시나리오마켓 2006년 2/4분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작년 여름, 밤새 모기가 물어댄 장딴지를 긁을 여유도 없이 수정한 시나리오를 프린터로 뽑으며 빠진 페이지가 없나, 잉크가 번진 곳은 없나 노심초사하던 기억이 난다. 종이가 누래 보이는 걸 걱정하며 부랴부랴 청량리행 전철에 몸을 싣고 제멋대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도 같다. 전봇대조차 늘어질 듯한 더위였지만, 택시비가 빈혈보다 무서웠던 나는 청량리역에서 영화진흥위원회까지 걷기로 했다. 더웠다. 하지만 가슴에 품은 시나리오 한편 때문에 아지랑이 속의 돌담길도, 땀을 흘리는 뚱뚱보 수박 장수도 예뻐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내 생에 첫 공모전을 응시했고, 돌아오는 길에 먹은 맛없는 냉면처럼 미적지근하게 떨어졌다.
이 날을 생각하면 왠지 아련하고, 재미있고, 유쾌하고, 낭만적이다. 하지만 이젠 아마도 이런 낭만적인 산책은 영진위 돌담길에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을 열고, 시나리오 마켓 사이트로 들어가 클릭 한 번이면 내 시나리오가 시장판에 누드 차림으로 전시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누드엔 내 것이라는 문신까지 새겨져 있다.
공모전 담당자 책상위에 시나리오가 몇 편이나 쌓여 있는지 살피며 은밀히 경쟁하던 시절은 이로써 지나간 것 같다. 아이디어를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는 것도 끝이다. 이제는 시나리오 마켓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실탄을 들고 감독이나 영화사에 직접 총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멋없고 낭만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손님들과 (감독이나 영화사)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나리오 마켓’ 이라는 일일장이 생긴 지금, 공모전이라는 전통적인 일년장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여타 다른 공모전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공모전만 고집하며, 마켓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차려놓은 밥상에 자신의 수저를 놓지 못하는 일이라는 거다.
시나리오 마켓이 생기면서 작가들은 이제 시장 통에 나가 일일이 작품을 사달라고 소리칠 일도, 내가 직접 핸드메이드한 거라고 떠들어댈 일도, 도용당하거나 도둑맞을 일도 없게 됐다. 게다가 운 좋으면 나처럼 당선되어 창작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일 년에 한번이나 두 번이 아니라 매 분기마다 말이다. 내 생각엔 마켓으로 인해 작가들이 묵묵하게 자신의 작품만 열심히 빚어 장인이 될 수 있는 보다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 같다.
또 하나 더, 작가들이 환영할 만한 일은 예전에 비해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될 가능성이나 기회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예전 영진위 공모는 뽑힌다 해도, 그것이 곧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켓이 하나의 시나리오 시장이라는 성격이 분명해진 만큼 이제는 추천된 작품이나, 당선된 작품이 영화화될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다. 실제로 8월 초 현재 시나리오 마켓이 매매한 작품은 19편이나 된다. 올해 시나리오 마켓이 생겼다는 점을 생각할 때 만 7개월 만에 이룩한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나리오 마켓이 작가나 영화계 양쪽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 넣는 존재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시나리오 마켓이 아직 완벽한 시장은 아닐지 모른다.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추천되지 않는 글은 그대로 묻혀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글이나, 시나리오검색의 어려움, 전문 읽기에 대한 불편함 등 여러 가지 개선점들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마켓이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그 기능을 더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들을 수렴하여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시나리오 마켓에 대해서 다들 알고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켓을 만드신 많은 분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판을 벌여놓았고, 그 판에 슬쩍 끼어들기만 하면 된다는 데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그 판에서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작가님들, 영화인들이 많이 늘어나 한국영화계가 덩달아 신명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문화] 2006년 9월호
서울서 올드 공주들 놀러오면 함 구경 가봐야 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