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인간이 하는 행위는 보상을 위한 것이다. 어린 아이도 심부름을 한 후, 돈까지는 아니더라도 칭찬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오르기를 바라며,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로또를 긁으면서도 일확천금을 꿈꾼다. 웃기게도 그냥 '기록'이라는 보상을 위해서도 사람은 움직인다. 오직 기록만을 위해 머리도 기르고. 손톱도 기르고 물구나무 자세로 계단도 오른다. 심지어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무슨 보상을 바랄까? 이 때까지의 후기에는 '마음은 비우고, 몸은 노곤해지길' 원한다고 말해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우린 원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산에게 보상을 원한게 아니었고, 자신에게 원했다. '자신이' 움직여서 몸이 늘어지길 원했고, '자신이' 비워서 머리가 맑아지길 원했다. 산은 저기에 있는 '무생물' 이었기 때문에 어떤 보상을 바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여겼고, 그게 당연했다. 맑은 공기, 나무, 흙, 바위가 그곳에 있어줘서 고마왔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산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무렵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히 흠뻑 젖을 것을 각오하고 우중산행을 즐기기로 했다. 곧 비가 멈췄지만 또 내리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오늘 우리 중 누구도 비에 젖질 않았다. 오히려 행복감에 흠뻑 젖었다. 어떤 뜻 깊은 이벤트가 있지도 않았다. 단지 산, 그 자체 때문에 그토록 행복했다.
낯설어서 이상하고도 너무나 감미로운 경험이다. 산은 오늘 우리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껏 즐겁게, 따뜻하고 시원하게 품어 주었다.
처음 산입부터 알았다. 산이 다른 모습이라는 걸. 산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모든 길을 물로 부드럽게 밀어내고 자신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의 산행에서는 산로와 계곡이 분리되어 있었다면 오늘은 '길' 이 없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길은 폭포로 변했고, 진흙내음이 가득찼다. 올랐던 모든 능선마다 산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곳엔 계절도 구분도 없었다.
조금 가파르다 싶은 오르막을 지나면 마치 기다린듯 산바람이 마중나와 감싸안고 애무하여 그 모든 더위와 습기를 날려 버렸다. 계단마다 바위마다 졸졸졸 물을 흘려보내며 쉴 새 없이 종알 거렸고, 모든 낮은 곳에 잔칫상인냥 沼를 장만했다. 구비구비 펼쳐진 녹음은 두 팔을 벌려 안아주려는 듯 뛰어내리라 유혹했고, 빗방울로 간지럽히다 햇볕으로 어루만지고, 몸을 날릴 듯 바람을 내뿜다가도 고요한 침묵으로 계면쩍어하며 산은 종일 장난질을 쳤다.
우리는 나우시카처럼 바람을 타고 날았다. 바람은 피부 저 깊숙히 스며들어 몸만이 아니라 머릿속 찌든 때까지 깨끗이 정화시켰다. 이 시원하고 다정한 바람속에선 숨을 쉬지 않아도 산소가 스며들고 몸이 투명해져서 자신이 물처럼 느껴졌다. 바위에 몸을 눕히고 폭포수의 안마를 받을 때에는 몸의 모든 맺힘과 결집이 풀어져 가벼워지고 시원해지다 못해 자신이 바람처럼 느껴졌다. 이 투명한 물을 멀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점차 투명해져 無로 회귀될 듯, 몸덩어리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갔다. 산의 모든 곳에 바람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산의 모든 곳에 크고 작은 폭포들이 시원하게 불어 내렸다. 장마후 아주 잠시 동안 산은 자신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한꺼번에 전시했던 것이다.
산은 이처럼 한 꺼풀씩 옷을 벗고 야생의 모습 그대로를 던져 우리에게 최대한의 쾌락을 선사했다. 산은 살아있었다.
살아있는 산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산을 아끼고 느껴가는 첫 길목에 선 우리의 손을 잡아 끌며 위무하고 온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속삭여 존재를 드러냈던게다. 자연과 자연이라는 두 존재가 합일이 될 수 있도록...
쿤타킨테는 생각했다. 북소리 언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토록 알아듣기 쉬운데, 왜 인간의 언어는 이토록 어려울까. 어제는 종일 산에 북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혼자 울고 있는 내게 이름도 몰랐던 친구가 다가와 조용히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을 때, 절망과 허무의 구렁텅이에서 그 이름마저 부정했던 신이 다가와 조용히 또 다른 세계로 올려 주었을 때 느끼는 그 하염없는 감사와 사랑이 북받쳐 오른다.
아둥바둥 대가를 위해 몸부림치던 지난 시절의 일 분, 일 초가 부끄러워지며, 이 바라지도 않던 보상에 겸손해 진다.
어제의 산행 동무들에게도 감사한다. 우리는 다 같이 미소지으며 이 모든 감정들을 공유했고, 어디에 있건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건하게 잡고 있었다.
[ 산이 선생님, 선생님의 투박한 표정과 말투속에 영국식 '매너'가 아닌, 한국식 '배려'가 항상 졸졸 흘러 내리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선생님 허리는 우리의 자산입니다. 잘 간수하세요.^^)
인란 언니, 언제나 자애롭고 예쁜 얼굴로 이것저것 챙기고 보살피고 가끔 뒤로 넘어가게 재밌는 농담도 하시고, 언니는 정말 매력덩어리에요. (왜 언니가 스토킹 당했는지 알겠어요.^^)
한숙 언니, 어떻게 그런 따뜻함과 자유로움이 언니 얼굴에 넘쳐나고 있는 건가요? 언니는 언니 자체가 산 같아요. (언니 아이들이 부러울 지경...^^)
진구 오빠, 비록 과거 천재, 현재 바보이지만 (^^) 오빤 점점 더 멋있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 가는 군요. 그렇게 점점 나아지는 사람이 매력있어요. 그 **분에게 감사해야 되요.^^ 오빠의 빈 곳을 말끔하게 채워 줬나봐요.
영희 언니, 벌써 보고 싶어요. 저번 산행부터 따뜻한 언니가 있어 산행이 더욱 즐거워 졌어요. 조그만 가방 메고 와도 뭐라고 안 그럴 테니 꼭 다음에도 함께 해요.^^
경화야, 와인잔도 챙기고 수박도 가져오고 무거운 가방 들고 다니느라 수고했어. 네가 있어서 산행이 더 재밌자나. 다음 번에도 왔음 정말 좋겠는데... 흑~. 경내에서만 큰소리로 안 떠들면 머릿속에 있는 말 그대로 쏟아내도 뭐라고 안 할께.^^
민호야, 퉁퉁 붓고 힘든 몸 이끌고 다니느라 정말 힘들었지? 그럼에도 씩씩하게 잘 웃고, 잘 먹고 꿋꿋하게 잘 오르고 잘 내려오더라. 물론 많이 운동하고 산행해서 건강 되찾아야 하겠지만, 너무 답답해 하지마. 네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씩씩함이니까.^^]
지금까지의 산행 후기와는 달리 '뭘 먹었고,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놀았다.'로 써 내려가지 않은 것은, 어제 산행에는 '사람'이 없고 온통 '자연'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우선 써서 올리고 그 다음 고친다.' 가 습관이라 올려놓고 갑니다. 저 원래 이상하자나요. 용서해 주세요.TT 술김에 마구 쓰고 정신도 하나도 없어서 제가 무슨 *랄을 해 놓고 갔는지 나중에 보면 놀랄지 몰라도 지금은 뇌가 멈춰서리...==; 다들 술 먹고 뻗어서 앞으로 더 먹고 더 뻗을 제가 볼 때까지 안 봤으면 좋겠긴 한데... 꾸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