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오전 전철안은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이동을 안하는터라 저 혼자서만 등산가방 메고 그들 한 가운데 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햇볕은 오늘도 쨍.쨍. 없는 모래알도 반.짝.
6년여 만의 산행이라 살아 돌아오리라 살짝 다짐했습니다.
<푹푹 찔 줄 알았던 산 속은 의외로 살만하다는 꽃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찹니다.>
<가는 길이 험난해도 계단보다는 뿌리가 좋습니다.>
맨 뒤에서 졸졸 따라가며 이런 짓 하며 올라갔습니다.
<너도 올라가고, 나도 올라가고.>
<헬기장에 착륙한 고추잠자리>
세월아 네월아 올라오는 것도 수고했다고 맛있는 비빔밥을 저 자신에게 선물했습니다.
<밥 먹기 전 정기 받으러 돌고 도는 사람들>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정상을 밟았습니다. 정산을 꼭 밟아야 하나라는 느림보주의자의 눈으로
봐도 정상에서 내려다 본 아래는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즐비해 있었습니다.
바위는 따땃했습니다.
<모두들 떠난 뒤 남은 적적한 정상>
<빛을 너무 먹은 핸펀 카메라가 자동으로 초점을 흐립니다.>
<정상까지 따라온 아까 그 고추잠자리>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얽혀버릴 하행길을 암시해주는 거미줄>
사람 뒷꽁무니를 따라갈 땐 명확하던 길이 두 갈래, 세 갈래, 무한대로 펼쳐집니다.
여보세요~ 라고 외치자 까마귀가 까악~ 하고 대답합니다.
사람을 잃고, 이정표를 잃었습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연락을 취해봅니다.
민호 씨의 문자 보내는 삐뽕삐뽕 소리가 묘하게 울려 퍼집니다.
..잘못 온 것 같습니다. 드디어 선택의 순간.
되돌아갈까.
두 사람 머리 위로 기차처럼 길게 늘어서는 무수한 말줄임표 끝에는 까마귀가 울었습니다.
내려오던 길이 너무 미끄럽기도 했고, 가파른데다가 꽤 왔던지라
어차피 일행도 하산중일거라 판단, (..청계사 생각을 못했습니다.)
계속 끊기는 핸펀을 때려주고,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정글숲은 축축히 젖은 검은 땅과, 미끄덩미끄덩 발걸음, 습기 가득한 열기 속에서
잔치가 벌어진 모기떼들을 헬리콥터처럼 손목을 돌려대며 내려갔습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이정표가 없어도..
누군가가 지나간 발자욱들로 다져진 땅과
쓰러진 나무와 무성히 자란 풀숲이 앞을 막아도..
막다른 곳까지 가보면 길은 항상 이어집니다.
다 내려가면 도대체 일행과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걸까?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혹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아닐까.
<그 와중에도 예쁜 것들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하산길은 의외로 길었습니다. 아까부터 다 내려온 듯한 분위기는 물씬 풍겨주지만,
절대로 끝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침내 다른 등산객도 만났으니, 길은 길인가 봅니다.
<피곤한 발을 차갑게 얼려준 졸졸 시냇물>
어떤 아저씨의 타령가락이 울려퍼지는 하행길은 그렇게 나름대로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중간에 잠깐 일을 보고 뒤따라가겠다는 민호씨를 뒤로하고 낼름 내려오다가..
아까 그 아저씨 일행에게 혼났습니다.
그래서 얌전히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쥐가 나서 고생했다더군요. 미안합니다.. 도움이 못돼서..
다 온 것 같은 하행길은 그 뒤로도 30분은 족히 내려온 듯 합니다.
다 내려오니 군인 두 명이 저희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더군요.
..군부대랍니다.
겨우 마을로 나와 길에 물뿌리는 아저씨께 가장 가까운 역이 어딘지 여쭈어보자
양재역이랍니다. ..역시.. 뛰어봤자 벼룩이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나라는 안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을 물어보는 저희에게 그 아저씨는 직진하다가 (손은 왼쪽으로 꺾으시며)
오른쪽으로 가면 된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같았습니다.
결국 버스에 올라타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퇴근 길 전철 속은 아침처럼 여전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뗏국물이 흐르는 얼굴에 땀냄새 푹푹나는 몸으로 서 있기 민망하야 바닥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노라니 한 아저씨가 내리시면서 자리를 양보해주셨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못한 채 저녁하고, 청소하고.. 축구보다가 단잠에 빠졌을 때 즈음..
문자 때문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많이 걱정하셨다는군요..
죄송합니다..
어쨌든 무사히 내려와서 한시름 놓으셨는줄 알았는데..
저는 나름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내려왔는데, 다른 분들이 저희 신경쓰시느라 마음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현명하게 길을 잃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위도 쉬고, 나도 쉬고.>
오늘의 교훈. 스테로이드는 함부로 복용하지 말자.
오늘의 소감. 민호군, 더운데 첫산행자 따라 고생했습니다. 몸조리는 천천히 하세요.
같은 산을 올라 다른 산을 내려왔습니다. 반쪽짜리 후기가 되어버렸네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이건 길도 아니고, 길이 아닌 것도 아닌 길 내려오며
무엇이 재밌었을까요??
자, 여러분들의 즐거운 상상 후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한방 먹었어요.
후기 중에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보기는 쉽지가 않아요.
따를 당해서 그런가... 따를 해서 그런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항상 고민되는 문제가 있어요.
즐겁게 떠들고 돌아오면 즐거운가...
고독하게 산과 이야기 하며 돌아오면 즐거운가...
쏟아지는 잡목의 청계산을 안녕하고 돌아왔을 때.
다음엔 보기 힘들 거 같던 청계산이...
이렇게 흠뻑 젹셔질 줄이야...
수진씨, 같이 하는 즐거움도 다음에는 꼭 느껴보시길~~
<제법 잘 어울릴 법 한 음악을 걸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