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면서 보았던 가장 아름다웠던 장례식이 있다.
2003년 2월에 갑작스런 부고가 하나 날아들었다.
양평에 살고 있던 26살 지은이가 폐렴이 깊어져 그만 생을 놓았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손을 높게 치켜 올리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기를 좋아했던 아이,
빳빳한 만 원권을 좋아해 누군가 주면 자신의 보물 상자에 모아 꺼내서 세어보고 또 세어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아이,
가끔씩 아이들이 찾아오면 만 원권은 뒤로 감추고 ‘천 원권’을 슬며시 내밀며 애정을 표현했던 아이.
우리 혜수 희정이가 대문에 들어서면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졌던 누구보다 외로웠던 아이.
몇몇 지인들에게 수시로 전화해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했던 아이, 언제나 속 헛헛해하며 음식을 즐겨먹던 아이...
지은이는 26년 세월을 다운증후군으로 살아왔다.
을씨년스러울 수도 있는 한 겨울 다행히 햇빛이 적당히 내려쪼였고 양평의 한 동네 병원은 극히 한산해
지은이는 조용한 기도 속에서 마지막을 품위 있게 머물 수 있었다. 발인을 하고 성당에서 의식을 치루고
화장터까지 가는 길도 순조로웠다.
기다림 없이 화장까지 마치고 지은이 네와 이웃하는 분이 운영하는 한 카페에 모였다.
물론 하루 장사를 기꺼이 접고 모든 일정을 함께한 주인은 술과 요기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오고
난로에는 고구마를 한가득 넣어 노랗게 익어가는 냄새가 솔솔 했다.
통유리 너머로 양평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이 참 평화로웠다.
“소원 이루셨네요, 먼저 보내고 싶어 하셨잖아요”
“그래도 회한이 남아...”
“10년 후에 갔어도 지금 마음과 같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제서야 아이 아버지의 젖은 눈빛이 좀 맑아진다.
카페 이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한 지은이의 사촌동생 둘이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클래식에서 트로트까지 클로스오버 되며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엄숙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유희가 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까...
아픈 몸을 갖고 태어나 26년 세월을 고되고 힘들게 사느라 애 많이 썼다고 내린 선물 같은 하루.
내 죽는 날이 오늘 같았음 좋겠다!
내 죽는 날의 무게가 딱 저만큼이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간판을 ‘생일’로 걸어놓고 웬 죽음에 관한 얘기냐고?!
너무 오래되고 기억도 나지 않는 태어난 날 보다는 앞으로 내가 살아내고 마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난 더 즐겁다.
ㅎ (그래 좀 괴팍하다!) 그래서 생일을 기념하는 통상적인 의례를 피하고 싶다.
가족들 친구들 혹 섭섭하다고 말하면 차라리 그냥 섭섭하라고 말한다.
산에 다니고 부터는 생일 날 산에 오르는 게 나에겐 가장 해피 버스데이다!
신기하게 올해도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내 생일 날 산샘께 미역국과 흰 쌀밥을 해 받쳐야 하는 좀 기구함이 있었지만
기꺼이 즐겁게 그 정도야...사실 내 생일 다른 사람의 생일 국을 끓이는 기분도 썩 좋았다.
북한산을 선물로 받으며 혼자서 조용히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즐겨야지.
아 이보다 멋진 생일파티가 어딨겠는가 말이다.
서둘러 탄 지하철 안에서 숨을 고르면서도 무척 설렌다.
그때 막 부르르 떨며 도착한 메시지 하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 축하합니다. 끝까지 사랑해요’
언제나 사랑을 남발?하는 월명이다. 미쳐! 얜 정말 스토커 맞아.^^
정말 입 다물어 달라고 ‘애원’까지 하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산으로 튈까...? 순간 그런 생각도 했다.
나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생일파티를 망칠 생각을 하니 약간 맥 빠진다.
효자리 초입에 들어 모두를 보내고 숙이 씨를 기다렸다.
그렇게 산속에 혼자 남으니 작은 두려움이 스치지만 여전히 고요함과 적막함이 좋은 게 크다.
숙이 씨가 영 다른 길로 들어서 방향을 튼 걸 확인하고 툴툴 털고 일어난다.
꽤 시간이 흘러 일행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이것도 선물이야. 이상하게도 난 산속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좋다. (그래 자학증상도 있다!)
그렇게 오롯이 나를 열고 산을 밟아 오르는데 아이구머니나 고작!
얼마 안간 곳에 모두들 왁자지껄 모여 있다. 숙이 씨와 날 기다리는 마음 깊은 배려겠거니 하면서도 말은 엉뚱하게 흐른다.
그래,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왁자지껄 실없는 말들을 건네며 희희낙락 하는 것 또한 넘 즐겁다. 산이잖아.
숨은 벽을 넘어 백운대 못 미쳐 점심상이 펼쳐진다.
결국 사람들이 손벽치며 불러주는 축하 송(성경님 시현님 성은 씨 선주 씨 특히 감사!)을 듣고 말았다. 이런 만담 자매 옥과 명 부르르~! 현옥이가 준비한 형형색색 다양한 종류의 무쌈 재료들이 펼쳐진다.
분명 어제 12시까지 과외 가르쳤을 텐데 잠도 안 잔건가?
현옥이 한테는 류함상 군이 발설 했겠군 짐작하면서(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내 자식도 내 편이 아닌 게야!)
어렵게 준비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은 짠한데 말은 또 막나간다.
“누구야? 조금씩 싸오랬더니! 아주 한 상을 내왔군!”
현옥이의 무쌈을 보니 생일 때마다 상 차려주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내가 좀 사람 복이 넘치긴 한다. ㅎ)
봐주겠다는 진구 종원이를 앞세우고 노적봉에 혼자 오르다가 바위에서 쭉 미끄러져
팔과 허벅지에 예쁜(핏물이 살짝 비친 멍든 색깔이 선명해 이쁘다. 자학증 심하다!! ㅋ) 외상을 제대로 크게 입었다.
그러게 종원이 진구를 왜 그냥 보내. (잘난 척 하다 항상 이 모양이다)
둘러보니 믿을 건 바위 옆 나무 한 그루다. 슬쩍 말을 걸어 도움을 청한다.
덕분에 이번엔 가뿐히 오른다.
이미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반긴다. 하루 종일 함께한 사람들인데 나 역시 새삼 반갑다.
인수봉과 백운대에 이어진 능선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을 압도하기도 하고 탁 트이기도 하고 평화롭기도 하다.
월명이가 기호를 추행하며 괴롭히고 난 종원이와 그 둘을 어떻게 깔끔히 밀어 처치할까에 대해 모의한다. ㅋㅋ
난 너희들을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려해...
시인통신에서 야리한 불빛과 음악이 소주 몇 잔에 기분 좋게 마음을 흔든다.
뒤늦게 합류한 조병준샘께서 “꼭 지들 다 취한 다음에 날 불러” 불만을 토로하시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경오는 흐느적거린지 오래고 가만히 있어도 구여운 혜자는 볼까지 벌겋게 되고
록이는 얼굴이 아주 불타고 민호는 산에 오를 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술을 넘긴다.
상훈이는 기분 좋게 미영이는 구석에서 아주 조용히 취해감이 분명하다.
아 원익 샘, 술 취한 모습 말로만 들었는데 진정 귀여우시더이다.
이건 정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현옥 양 물론 술 취해서 한 말이겠지만
언니 나이 돼서 언니 같은 모습이었음 좋겠다고 한말은 꼭 취소해줘. (정말 그건 안 될 말이야!!!)
날 위해 잠도 못자고 준비해 준 무쌈 정말 최고였어.
겨우 밤이 돼서야 술기운을 빌려 감사의 맘을 전하는 난 여전히 마흔을 넘겨서도 소통에 장애가 많은 인간이다.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월명, 내가 널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이 무슨 마음의 이중장부냐고 탓해도 할 수 없다!
혼자만의 은밀한 생일이 무참히 깨진 그날 함께 해줘서 들 정말 고마웠고!!! 가슴 벅차게 행복했어!!
백열등 조명 아래서 서서히 풀려가는 너희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려해 좀 성가셨다.
언제 어느 세월에 30대를 살아낼래?!!!
*오늘이 산샘의 진짜 생일이네.
샘 안 태어나셨음 이 스쿨의 방황하는 영혼들 (몇 분의 강사 분들 포함 ㅋ)
다 어디서 놀고 있었을지...
몇 십 년 살아오시느라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사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30대를 열심히 견디고 40대에 들어도 별 수 없다.
산샘과 나 가지샘 모두가 증명하고 잇자나..온 몸으루 철딱서니 없게...ㅎㅎㅎ)
*급하게 올린 글이니까 대충 읽어줘. 특히 혜자...ㅋ
언니, 다시 한 번 생일 축하드리구요,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우리모두 행복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