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인가, [세기의 사랑] 이란 제목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불현듯 난다. 심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의 러브 스토리였다. 에드워드 8세를 유혹하기로 작정한 심슨 부인은 에드워드 8세의 눈에 띄기 위해 비 오는날 정신 나간 여자처럼 우산도 없이 신나게 싸돌아다니고 진짜로 눈에 띄는 것에 성공한다. 모범답안같이 답답한 일상이 싫던 황태자에게는 이 여자의 파격적인 행동이 매력적이다. 결국 황태자의 사랑을 얻는 데에 성공한 이혼녀가 다시 비가 올 때 한 대사는 이렇다. (기억이 맞다면...)
"지금도 비가 오는데, 나가서 이 비를 같이 맞고 싶지 않소?"
"아뇨! 그런걸 왜 해요?"
'비' 하면, 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산지기와 채털리 부인이 나체로 비 속에서 난무하며 서로의 사랑을 순수하게 확인하는 장면이다. 서로 낄낄대며 모든 털에 꽃을 꽂아주고 산속에서 마음껏 뛰어다니며 소리지르며 눈 오는날 강아지처럼 날 뛰며 좋아한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수많은 장애와 갈등이 이 순간만큼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고, 온 몸에 뿌려지는 빗줄기로 두 사람의 응어리와 오해는 깨끗하게 씻겨져 나간다.
영화나 소설속에서의 비는 이처럼 낭만적이거나 수많은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는 비가 좋아요."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춥고 비오는 날 홀딱 젖으며 일을 다녀야 하거나, 길을 걷는 것은 좋아하질 않는다. 한국 일반 대중은 아마도 비오는날 "부침개에 술 한잔 걸치며 뒹굴대기"를 가장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우린 금요일에 빗속을 걸었다. 그것도 아침 10시 약속 시간보다 제각기 순차를 두며 일찍들 모여서 빗속을 걸었다. 우리는 빗속에 공항을 거쳐 철도, 버스, 전철, 배까지 이용해 무의도에 도착했고 무의도에서는 아예 두다리를 이용해서 산과 도로를 넘나들며 종주 비스무레한 것도 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인간이 발명해 낸 모든 탈것'을 거쳐 뭍에서 섬에서 산에서 도로에서 다시 뭍으로 왔더니 마치 어린왕자가 자신의 B-612 한 바퀴 돈 듯, '가볼데 다 가본' 희안한 기분이 들었다.ㅡ_ㅡ
평상시 비오는데 나다니는 걸 참 싫어하지만, 이 날의 길은 정답기 그지 없었다. 여기저기 바둑돌 안배하듯 앉아있는 정자들 덕분에 먹을곳, 마실곳이 아늑했고, 우비에 모자에 마구 뒤집어 쓰는 바람에 사오정 놀이가 한창이었고, 먹먹해진 귀로 아련하게 들리는 빗소리 장단에 맞춰 젖어버리기로 마음먹은 몸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이어지는 파도소리, 바다내음을 느끼며 멀리 보이는 고깃배들과 무인도들이 점점이 펼쳐져진 그 가운데로 계속 걷다보니 어디 먼 곳, 알 수 없는 그곳에 내가 와있는게 아닌가 약간 외로운 기분에 젖기도 했음을 기억한다.
너도 젖고, 나도 젖고, 비는 오다 안오다 변덕이고, 마구 껴입어 몸은 뒤뚱뒤뚱, 한 잔 걸친 와인덕에 뱃속은 따땃하고, 같이 걷는 동무들이 어린 시절 흠뻑 젖으며 흙장난하던 그 아이들처럼 다정했던 하루였다.
일일 총무 영희언니의 따뜻한 배려로 편하게 쭈욱 뻗어 맛조개, 피조개, 굴, 대하, 농어, 기타등등의 이름모를 조개들과 매운탕, 조개탕까지 모셔놓고 소주를 반주삼아 신선놀음을 하고 나니, 도끼자루가 썪는 대신 방구석에 널어놓은 옷들이 말라있었다.
물론 몸이 노골노골해 지는 산행이 그립기는 하지만,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가듯 걷고 또 걷다가 보이는 그곳에서 산해진미를 맛보며 일상을 잊는 이런 시간도 운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배낭여행도 하고, 트래킹도 하나 보다. 혼자 걷는 시간이 정리와 사색의 시간이라면 같이 걷는 시간은 나눔과 공유의 시간이다. 좋은 길동무는 성악에 피아노 반주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