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막이 연 날리는 노 대통령 내외 |
38년만에 시민개방.."북악산 가치 돈으로 환산 안돼"
(서울=연합뉴스) 성기홍 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시민들과 함께 38년만에 다시 열린 북악산을 올랐다.
노 대통령은 오는 4월 북악산 1차 개방을 앞두고 12일 오전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 서울토박이 가족들과 인터넷 공모에 참여를 신청해 뽑힌 시민 등 40여명과 함께 개방로 사전답사를 했다.
이날 사전답사는 홍련사에서 출발, 숙정문, 촛대바위, 북악산 정상에 이르는 1.1㎞ 구간에 걸쳐 이뤄졌다. 답사에는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을 비롯, 문화재, 도시건축 전문가들도 동행했다.
시민들이 북악산에 오른 것은 1968년 북한 게릴라 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 도심에 침투한 1.21 사태에 따라 일반인들의 북악산 출입이 통제된 이후 38년만에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북악산 동쪽 길 끝자락의 홍련사에서 수대에 걸친 서울토박이인 고완기(70)씨 가족 3대의 영접을 받으며 도착, 이들과 환담을 나누며 북악산 정상을 향했다.
노 대통령은 옛 서울 성곽의 북문인 숙정문앞에서 농악패의 길놀이 공연을 잠시 관람한 뒤 3번의 북소리와 나각(螺角.소라껍데기로 만든 국악기)이 울리는 조선시대의 전통 개문(開門) 의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숙정문을 통과했다.
촛대바위에서 남산쪽의 서울시내 경관을 바라본 뒤 산중턱쉼터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이날 정월 대보름을 맞아 차려진 부럼, 귀밝이술 등을 시민들과 함께 들며 북악산 개방의 의미에 대해 환담을 나눴다.
노 대통령은 우선 "대통령이 봉사하는 자리인데, 되고 보니 누리는 것이 참 많더라"며 "해외나갈 때 전용기를 타기도 하고, 공식적 나들이때는 도로교통을 적절히 통제해 신호대기하지 않고 가기도 하는 등 누리는 것이 있다"며 운을 뗐다.
노 대통령은 이어 "처음 대통령이 되고서 제일 기분이 좋았던 것이 북악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처음엔 혼자 누리는게 은근히 기분도 좋고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아 기분 좋았는데 나중 몇번 더 와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자'고 마음먹었다"고 북악산 개방 결심 과정을 설명했다.
북악산 개방시 군 부대의 청와대 외곽 경비 등의 문제점으로 다소 지연되던 개방시행 논의가 유홍준 청장의 강력한 건의로 속도가 빨라졌다고 부연한 노 대통령은 "문만 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역사를 느낄 수 있게 다듬어서 열게 돼 훨씬 가치가 높아졌다"며 북악산의 역사적 가치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북악산에 올라 북한산을 쳐다보면서 산이 없는 외국대도시에 팔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늠이 안되더라"며 "북악산은 북한산보다 값이 더 나갈 것이라는 공상도 해봤다"고 아름다운 경관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서울 시민들이 북악산 꼭대기에 올라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마음이 넓어지고 여유가 생겨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안목도 커지고 넉넉해 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용산 미군기지터의 녹지공원화를 통해 남산, 용산, 한강으로 이어지는 서울 남북 벨트의 녹지.문화 공간 복원 구상을 피력한 노 대통령은 "서울은 역사와 문화, 숲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태어나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서울은 시민 누구나 지하철 표 한 장 사들고 가볍게 나가서 즐길 수 있고, 가난한 연인들이 하루를 보내기도 어렵지 않은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곽 복원을 지휘한 건축가 정기용씨는 "성곽 복원은 서울을 정치.경제적 중심으로서만이 아니라 역사.문화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문화재위원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북악산 개방은 우리의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문화 역량의 징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전 11시40분께 정상으로 이동한 노 대통령은 연날리기 전문가인 부산동의과학대 이선우 교수와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365개의 방패연을 엮은 대형 줄연을 하늘로 띄우고 전통 연 제작 및 연날리기 방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문화재청은 오는 3월까지 북악산 개방에 따른 훼손 방지책과 전용 탐방로 등을 마련한 뒤 4월부터 개방 구간과 인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 내년 10월 와룡공원∼숙정문∼북악산∼창의문으로 이어지는 2.8㎞ 등반 구간을 완전 개방할 방침이다.
sg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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