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3-11 01:17:28 IP ADRESS: *.147.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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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백수5인의 자발적 문화백수론

고영직/ 본지기자, 문학평론가 사진/김민곤

 

김장호_에스파스다빈치 대표
늘 재미난 것을 찾는 김장호는 지독한 아이콘icon 중독증 환자이다. 그림엽서, 고서점, <선데이서울>, 책표지, 선거전단, 문신, 복권 등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일상의 문화품목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이 김장호의 주된 작업이다. 올해 여름에는 ‘이미지와 도상으로 읽는 문화사’라는 부제를 단 저서 『환상박물관』(개마고원)을 펴냈다.

성대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파리3대학과 일본에서 비교종교사와 도상학을 전공한 김장호는 ‘르네상스적 인간형’으로 통한다. 그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도상학은 지적 유희라고 볼 수 있지요. 기호와 그림 등을 통해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자기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지식의 고고학인 동시에 미래학의 의미를 갖습니다.”

김장호는 자칭 ‘B급 예술가’라고 하지만, 그가 경영하는 예술전문 출판사 다빈치와 갤러리 에스파스다빈치의 활동을 본다면 그의 예술성 혹은 예술에 대한 안목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스스로를 ‘B급 예술가’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일본의 아라타마 히로시 박사의 『B급 미술사』를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그 책을 보면서 인간과 문화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인문학과 마이너 문화에 대해 많은 걸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에 관한 박물지적 지식을 갖춘 김장호는 지난 5월 사재를 털어 일종의 대안공간 에스파스다빈치를 오픈했다. “우리 문화엔 중간문화가 없고, 진정한 학교 밖 지식인이 드물어요. 갤러리는 일종의 NPO(비영리활동) 공간이지요. 상상력과 재미가 넘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익금은 ‘바코드 있는 도록’을 출판해 마련하고 도서관에 납품해 운영의 자생력을 기르고 있다. 현재 고낙범, 최태훈, 김태준 등 역량 있는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도록을 펴냈다.

“요가와 명상 같은 웰빙 바람은 좀 바보짓 같아요. 저는 책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웰빙법이라고 봅니다.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저렴하고, 가장 확실하지 않나요?” 책을 좋아하는 김장호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책 읽는 시간이 아까운 탓이다. “문화적 백수는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어떤 점에서는 ‘고독’을 좀 느껴야 한달까?” 김장호는 문화백수 양성을 위해서 정부 차원에서 일종의 ‘문화쿼터제’를 도입하기를 희망한다. “기업의 접대비는 늘었지만, 문화기부금은 갈수록 줄잖아요. 스크린쿼터제처럼 기업이 문화접대비를 늘릴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조윤석_홍대 앞 문화예술인협동조합 대표
전 황신혜밴드 멤버로 활동했던 조윤석은 ‘홍대 앞 마당발’로 통한다. 하지만 요즘 조윤석의 마음은 편치 않다. 문화지구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홍대 앞을 지켜왔던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홍대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7월부터 8월까지 작업실 현황을 파악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에 예술인 8명이 떠났어요. 특히 그 중에 한 분은 25년 동안 오직 홍대 앞에서 한 자리만을 지키며 작업을 해오신 분인데, 결국 떠나고 말았어요.”

국외자의 시각이 아니라 ‘내부자의 눈’으로 볼 때 그 실상이 더 정확하다는 점에서 조윤석의 푸념은 의미가 있다. 현재 홍대 앞 문화지구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마포구에서 작성중에 있다. 조윤석은 “문화지구 지정은 타당성이 있지만, 홍대 앞 예술의 다양성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문화지구 지정이 지역의 예술공동체 조성과 상인들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함으로써 일종의 ‘정신적 캠페인’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상업화 바람에 밀렸던 홍대 앞 실험예술극장 ‘씨어터제로(대표 심철종)’의 경우 내년 5월에 옛 터의 지하 2층에 250석 규모로 새롭게 문을 열 예정이다. 홍대 앞이 문화지구로 지정될 경우 소극장과 갤러리 등 문화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건물을 매입할 때 취득세와 등록세가 50% 감면되는 등 건물주는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조윤석은 무엇보다 씨어터제로를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홍대 앞 문화예술인협동조합(약칭 ‘홍문협’)이 결성된 점은 큰 성취라고 본다. “문화는 결국 토박이 돌과 굴러온 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굴러온 돌은 실상 아무런 힘이 없어요. 탄력성 있는 지원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홍문협은 토박이 돌뿐만 아니라 굴러온 돌의 정착과 예술활동에 대해 든든한 힘이 되기를 희망한다.

조윤석은 요즘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 밥집에서 ‘알바’를 하면서, <불사조>라는 음반 작업에 몰두한다. 후배들과 함께 음악성 있는 포스트록 형식의 ‘괜찮은’ 시디롬을 곧 발매할 예정이다. “정글 속에서 차라리 행복하다”라는 조윤석의 말은 진정한 문화백수의 정신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무엇보다 조윤석은 희망시장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도 앞장서서 문화백수들의 ‘실업극복’을 위한 대안 마련에도 열성이다. 이 운동이 좀 더 정착된다면 예술공예운동의 한 거점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조윤석은 또 당인리문화발전소 건립 캠페인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당인리발전소를 해마다 촬영해온 안상수 선생의 사진작업을 줄곧 지켜봤어요. 발전소에서 나오는 ‘뭉게구름’을 보면서 아련한 향수에 젖곤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한 30년 정도 시설을 운영하는 식이었으면 해요.” 저성장 고실업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마인드는 우리네 삶의 방식이 일종의 ‘아티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아티스트를 꿈꾸는 조윤석은 “문화란 오래 버티며 하는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예전엔 조급증에 ‘빨리빨리’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홍대 앞에서 오래 버티고 살면서 ‘인디언 할아버지’처럼 후배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해요.”

조윤석은 취재중에도 홍대 앞을 지나는 뭇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느라 바빴다. 그런데 취재중 방심한 사이에 조윤석의 고물 자동차에 불법주차 스티커가 붙고 말았다. 그 스티커는 조윤석이 천상 우리 시대의 ‘문화 삐딱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김노암_대안공간 휴休 큐레이터
“자생적 인디 문화의 창작은 여가선용은 아니지요. 수익이 없어서 그렇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www.seoulfringe.net) 활동은 매우 전문적 활동입니다.”

홍대 앞 대안공간 휴休에서 일하고 있는 김노암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시각예술 분야의 큐레이터로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 올해 8월 20일부터 9월 5일까지 ‘인디 만발滿發’이란 주제로 홍대 앞에서 열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도 <내부공사>라는 컨셉트로 시각예술 분야의 전시기획을 맡았다. 프린지Fringe의 사전적 의미는 변방 혹은 주변부를 뜻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축제공동체를 의미한다.

“프린지 축제가 올해로 7회째를 맞았어요. 자율참가를 원칙으로 하는 이 축제가 해가 갈수록 기획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예술가들이 늘고 있어서 무척 고무적이에요. 초기의 문제의식에 대한 방향 전환 논란과 새로운 형식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김노암의 이 말에는 지역성에 대한 주최측의 고민이 투영되어 있는 듯했다. 지난 3~4년 동안 홍대 앞에서 축제를 벌여왔는데, 이제는 주민참여형의 문화를 어떻게 이끌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적잖은 것이다. 아마도 작품의 의도를 감추면서 관객을 유혹해야 하는 시각예술의 특성과 결부된 고민일 터이다. “하이 서울(Hi Seoul) 축제의 문제점은 ‘놀다 가라’는 식의 축제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은 기획 단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지요. 1년 365일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과 삶이 다함께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그런 탓일까. 김노암은 당인리문화발전소 건립 캠페인에도 관심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막상 진행되더라도 아이디어와 정책 그리고 실행 단계에서 현장 전문가들과 소통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우선적으로 치밀한 현장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여건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관官에서 하도록 노력해야죠.”

김노암이 볼 때 ‘프린지적 요소’는 이제 겨우 예술정책에서 수용하는 단계에 있다. 김노암은 “전사회적 확산을 위해서는 첫째,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둘째, 세대가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는 세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역시 아직 젊지만 후배 세대를 위해 좋은 작업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자신과 같은 사람은 “산업예비군에 속할 것”이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노암이라는 필명은 대표적 아나키스트인 노암 촘스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홍세존_홍대 앞 클럽 에반스 대표
3년째 홍대 앞에서 재즈클럽 에반스(EVANS)를 운영하는 홍세존 씨(42)는 ‘예술 마인드’ 있는 클럽 운영자로 호가 났다. 홍대 앞 한 호프집에서 클럽 대표들을 만났을 때, 누구랄 것도 없이 홍 대표를 지목했다. 상업성을 추구하되, 재능 있는 후배 재즈 연주자를 위한 클럽 운영을 목표로 묵묵히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성품 때문이다.

일본에서 컴퓨터음악을 전공한 뒤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 재능대와 백제예술대 실용음악과에 출강하는 홍 대표는 국내 대중음악 환경이 점차 좋아질 것 같다고 진단한다. “노력파 후배들을 좋아하죠. 학생들에게도 부모님들이 이해해서 음악을 하는 만큼 열심히 안 하는 것은 음악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야단을 쳐요.” 홍 대표는 재즈 연주의 즉흥성에 중독되어 결혼 후 마련한 아파트 전세금을 빼내 가게를 차렸다. 40평 남짓한 클럽에는 20대 초반에서 40대까지 재즈 애호가들이 곽윤찬 트리오와 액션핑거파티의 재즈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홍 대표는 요즘 석 달에 한번씩 신인발굴을 위해 에반스 플레이어를 진행한다. “테크닉과 팀 컬러를 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마인드입니다. 포(for), 갤럭시바운스, 도토리, 위스토리(westory), 보디 일렉토리 같은 젊은 그룹들에서 작은 희망을 봅니다. 재즈 감상을 하려면 듣고 싶은 악기 중심으로 듣는 게 필요합니다.”

홍 대표는 최근 ‘사운드 데이’를 주관해 운영하고 있다. 보는 문화에서 즐기는 문화로 문화수용 패턴이 달라지면서 클럽데이가 대형화되는 현상을 감안해 볼 때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옷차림새만 봐도 사운드 데이에 오신 손님들을 알 수 있어요. 마흔 살이 넘으면서 돈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합니다. 앞으로 10년 정도 클럽문화가 정착된다면 은퇴해서 작은 공간에서 재즈를 연주하고 싶습니다.” 금요일 새벽 1시, 홍 대표의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홍 대표는 재즈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클럽에 와서 보라”고 권한다. 음악의 모든 것을 접해 보았는가? 대중음악의 전진을 꾀하려는 사운드 데이에서 그들의 새로운 몸짓을 엿볼 수 있으리라.
 

심산_시나리오작가
시, 소설,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글쓰기를 펼쳐온 시나리오작가 심산은 수년 전부터 산악문학에 심취해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산악문학이라는 장르는 사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독자적인 문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리처드 F. 플렉이 편집한 『존 뮤어의 마운틴 에세이』는 ‘자연보호의 아버지’였던 존 뮤어(1838~1914)의 자연철학과 문명에 대한 사유를 담은 산문을 묶은 책으로 산악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산이 좋아 산에 미친 심산은 ‘악계岳界’에서 대표적인 산악문학가로 통한다. 그가 2년 전 펴낸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는 월간 『산』과 『사람과 산』 등의 잡지에 라인홀트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 이태의 『남부군』과 같은 일종의 산악문학에 대한 집중 리뷰를 시도한 책으로 독서계에서 적잖은 반향을 얻었다. 이 책을 토대로 KBS ‘TV, 책을 말하다’에서 1시간 동안 방영한 적도 있다. “외국의 산악문학은 철학과 문체가 결합된 고급문학의 한 장르를 이루지요. 특히 영국의 경우 1천 미터 이상의 고산이 없는데도 독보적인 산악문학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등산 취미는 ‘애산愛山’이란 아호를 썼던 조부의 영향이 컸다. 그의 이름이 ‘심산沈山’으로 지어진 이유도 조부의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요즘 김산의 『아리랑』을 시나리오로 쓰고 있어요. 하지만 IMF 때문에 작업이 중단된 시나리오 <산> 집필 작업은 계속 써나가고 있습니다.” 심산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 생계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못내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과 함께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딸아이는 벌써 20개 국 이상 여행을 다녔지요.”

심산의 산행은 주로 주중에 이루어진다. 당연히 딸의 학교수업을 빼먹게 된다. 지난 9월초에는 딸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다. “가족여행이 학교수업보다 더 중요하다고 봐요.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2권 원고를 모두 마무리했고, 시나리오작법 책인 『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을 해냄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이에요.” 책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는 11월 말쯤에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에 산행을 갈 계획이란다. ‘빨리 일 마치고 놀러가는 것’이라는 그의 백수철학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기전문화예술](경기문화재단) 2004년 1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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