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5-02 16:55:40 IP ADRESS: *.254.8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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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잠자는 미남미녀들을 깨우자"

[인터뷰] 양희규 간디학교 교장

권은정(ysreporter) 기자
지난 2월 19일. 단상 전면에는 '이제 당신은 영원한 간디인'이라고 쓰인 보자기만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좀 어수선한 게 사실이다. 딱 맞아 떨어지게 의자를 정렬해 두거나 내빈용 물잔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강당 입구에는 수백 켤레의 신발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학부모와 학생들 모두 마룻바닥에 제각기 다른 자세로 앉아 있다. 비교적 앞쪽에 이 학교의 교장인 양희규 선생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 다섯번째로 맞이하는 졸업식이다. 오늘 졸업생은 모두 22명이다. 재빨리 그 중에 몇 명이 대학에 갔는지 물어 보았다.

"열아홉 명이요."

▲ 간디학교 아이들의 식구 총회.(간디학교에서는 중요한 의결사항은 '식구총회'를 통해 결정한다.)
ⓒ2005 인권위 김윤섭
그가 자랑스럽게 답한다. 그는 높은 진학률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모두 '알아서' 대학이라는 곳에 갔기 때문이다. '명문 콤플렉스'와 소신 지원. 간디학교라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그래서 양 교장은 올해의 진학 현황이 특별히 기쁘다. 좋은 대학의 의상학과 대신 학위 인정도 안 되는 패션 전문스쿨로 가는 아이들, '소신에 따라' 여행사 인턴, 미용사 공부, 만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 바깥을 택한 아이들도 있다.

"좋은 겁니다. 대학 안 가는 아이가 늘었네요."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에 한 교사가 양 교장에게 막 한 아이가 대학 진학에서 개인교습으로 진로를 바꿨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주 좋은 겁니다. 대학 안 가는 아이가 한명 늘었네요. 한국의 학벌 중심 사고를 정통으로 깨는 아이들이지요. 제가 좋아합니다. 그런 학생."

내가 학부모라면 이런 교장은 좀 불안할 것 같다. 갈등이 있을 법한데?

"학부모들이 마음을 비우기로 하신 겁니다. 아이들이 제 모습대로 인생을 살도록 지켜보자고 결정하신 건 데 이번 고3 부모들은 가장 돋보이는 분들입니다."

나는 마룻바닥에 앉은 학부모들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혹시 자신이 대안학교에 오고 싶어한 게 아닌가, 그런 의심이 가는 얼굴들이 보인다.

학교 마당에서는 지리산 푸른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하다. 간디학교 아이들은 이 맑은 산공기를 날마다 호흡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왜 대안학교들은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나?

"경제적인 이유가 있지요. 하하하… 요즘은 도시에도 생기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우리도 도시로 나갈 수도 있지요. 도시에서는 여러 사회 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그의 의중에는 욕심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좀 떨어져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자연과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고 개척하자는 바람이 있다. 그는 자연의 그런 힘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다. 군대 시절 강원도 쪽에 있었는데 자연이 너무 좋아 넋을 잃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연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아, 정말 좋구나 하면 그냥 그대로 가 버리니까요. 주위 사람들이 힘들지요.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는 20대 시절부터 박달재, 금오산 등등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별을 보며 충만한 행복감에 젖어 살았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가서 철학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주위에서는 그가 학자로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는 딱 한학기 가르친 다음 제자와 더불어 이곳 산청으로 들어와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간디농장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도 세웠다.

학교가 싫어 학교를 만든 사람

▲ 양희규 교장
ⓒ2005 인권위 김윤섭
"학교는 언제나 제가 그리던 꿈이었지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인 1990년대 초 아이들이 자살한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밤잠이 안 오는 거예요. 어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는 학교가 싫어서 학교를 만든 사람이다.

"긴급조치 시절에 고등학생이었지요. 학생회 부활시키고 집회 주도하고 그랬더니 문제아라고 학교에서 나가 달라고 하더군요. 참 학교가 싫었어요."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 아이들이 자유로운 학교인 간디학교를 만든 지 8년이 되었다. 처음 문을 열어 2년째 되는 해 특성화 고교로 인가를 받았고 올해부터는 학급도 늘려 신입생을 받는다. 중학교 인가 문제를 둘러싸고 한동안 진통을 겪었지만 지금은 교육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책상 앞에는 물레질을 하는 간디의 사진이 놓여 있다. 그가 간디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지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간디에 관한 책을 읽고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이 들었지요."

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청소 일을 할 때도 그는 간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도 간디처럼 일하며 공부했다. 그의 맑은 눈빛은 아마 오랜 정련을 거친 결과이리라.

"이제는 전만큼 육체노동을 할 수가 없네요. 몸에 무리가 와서… 요즘은 간디를 따라가기에는 제 색깔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숲의 사람 소로우가 제가 따르고 싶은 이가 아닌가 싶네요."

그의 이런 성향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개인적인 가르침보다 학생들이 하루하루 생활 속에서 무엇을 느끼느냐, 그 문화가 중요하지요. 문화가 사람을 바꿉니다. 제가 말을 아무리 잘해 봐야 그냥 지나가는 소리지요."

그가 말하는 간디학교의 문화는 '수평문화'이다.

"교육이나 학교 생활에 관련된 것 모두 교사나 학생 1인 1표씩 행사합니다."

2년 전, 금연학교에 관한 규칙을 제정했을 때 그는 무척 긴장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거의 퇴학을 당할까 봐.

"세번째 규칙을 어기면 자퇴하도록 규정을 만들더군요. 흡연 학생이 20명 가까이 있었는데, 결국 모두 금연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고민해서 만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굉장히 불명예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가 전통으로 바뀌는 거지요."

간디학교의 아이들이 관용에 대해서 배우고 익히는 것이 또한 그의 자랑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오랫동안 대화하면서 사람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우리 어른들은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일도 아이들은 웃으면서 넘깁니다. 사실 우리 어른들은 그런 교육을 못 받았잖아요."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긍정적이고 관용적으로 자란 아이가 이 세상에 나가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양 교장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인권이 아니겠냐고 되묻는다.

"자신이 결정하는 생활 방식, 진로, 교사와의 수평적 관계,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기, 자기의 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권리라기보다는 그냥 자기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사회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간디농장으로 시작한 이 터에 안솔기 마을이 있다. 생태마을인 이곳에는 20가구가 산다. 아이 교육을 위해 아예 이곳으로 옮겨와 사는 학부모들도 있다. 양교장은 학부모들의 열성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아이가 원하는 삶을 돕고 있는가?

▲ 스스로 자신을 자연인이라 칭하는 양희규 교장이 학교에서 기르는 개 태평이와 함께 오후 산책을 하고 있다.
ⓒ2005 인권위 김윤섭

"문제는 아이가 원하는 삶을 돕고 있는가? 부모의 기대를 주입하고 있는가? 그거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지요."

그는 지금 전국대안학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처음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자면?

"시민의식이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꼭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이지 않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힘이 되지요. 우리가 대안학교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 대안이 될 수 있는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지요."

그는 대안학교가 이제 제2기로 접어들 때라고 본다.

"초기 대안학교 운동을 낭만주의 운동이라 본다면, 이젠 그것을 넘어선 진보적인 대안학교 운동이 필요합니다. 1990년대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던 학교를 수용소라고 한다면 요즘은 싸구려 여인숙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냥 잠만 자잖아요. 옛날에는 열정과 헌신 하나로 통했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치열한 연구와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그의 화두는 '숲속의 잠자는 미남미녀들을 깨우자!'다. 아마도 '백마 탄 기사의 특별한 키스'가 절대적일 것 같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 동기 부여! 아이 하나하나를 위한 맞춤식 교육이 바로 우리의 키스입니다."

어느 사이 졸업생들이 겅중거리며 강당 안으로 뛰어들어온다. 모두 환한 표정이다. 양 교장은 졸업장을 건네주며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 준다.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으로 한 선언이 읽힌다.

"자유는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월간 인권>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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