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1]도심 한복판의 노스탤지어
김대우의 맛집기행(2) 제남식당의 메밀국수
강남역 부근은 누구라도 인정하듯 현재 한국 최고의 상권이다. 수많은 어학원들과 극장을 드나드는 유동인구들이 이리저리 거대한 물결처럼 움직이면서 지갑을 여는 곳이다. 당연히 각종 점포들도 고액의 임대료를 지불할 자신과 배짱이 있는 곳들만 모여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상권에서도 가장 노른자위라고 할 뉴욕제과 뒤편 길에 떡하니 위치한 제남식당 (02-3482-8316)은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최첨단의 디자인으로 무장한 간판들 사이에 ‘미니멀’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글씨체로 자신을 알리는 건 차치하고라도 안으로 들어서면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에도 주먹만 한 에어컨을 틀어놓고는 나머지는 선풍기 바람으로 때운다. 메뉴는 또 어떤가. 여름엔 메밀국수와 유부초밥! 겨울엔 우동과 유부초밥!
한마디로 자신감 그 자체이다. 메밀국수를 시켜보자. 그럼 그때부터 할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물론 흔한 욕쟁이 할머니처럼 욕을 해대는 건 아니지만 끝없이 ‘충고와 조언’을 반복해 주신다. 주테마는 당신 집의 메밀국수 장국은 아주 맛있기 때문에 파와 무 간 것, 겨자 따위를 넣지 말고 먹어달라는 요구이다. 더운 데다 메뉴 선택권은 없고, 게다가 할머니의 ‘충고와 조언’은 계속되고....슬슬 짜증이 날 만도 하다. 하지만 테이블에 오르는 메밀국수를 장국에 적셔서 입에 넣는 순간, 모든 짜증은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우선 국수발에서 느껴지는 감촉부터가 다르다. 촉촉하면서도 쫄깃하고, 그렇다고 질긴 것도 아닌, 한마디로 상큼한 느낌의 면발이다.
그리고 장국. 이 집의 장국은 멸치향이 깊게 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메밀국수 집의 장국이 일본식이라면 이 집의 그것은 한국식이라고 감히 부르고 싶은데, 부드럽고 달지 않으면서도 메밀 면과의 조화가 정말 훌륭하다. 일인당 두 판씩 주는 분량인데 한 판을 비우고 다음 판을 끌어 올릴 즈음에는 할머니의 ‘충고와 조언’에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된다. 자연히 할머니에게 공손하고 순종적이 되기도 한다. 면은 다 적셔먹고 남은 장국을 아쉬움을 달래며 홀짝거리면서 깨끗이 비울 즈음에는 다른 집에서는 이제 메밀국수를 먹을 수 없겠다는 예감마저 들게 마련이다. 통의동에서 70년 전에 창업하여 대를 이어 지켜온 정신, 바로 좋은 재료와 맛을 위한 정성만이 식당의 본분이라는 그 정신이 만들어낸 노포(老鋪)의 맛이다.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한 달에 한번 어머니와 시외버스를 타러 가곤 했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표를 끊으시고는 꼭 근처 메밀국수집에 들르시곤 했다. 당시에는 붉은 칠을 한 사각 나무틀에 대나무 발을 깔고 그 위에 국수를 담아 주었는데, 그 국수를 먹는 동안 어머니의 몸에서 풍겨오던 옅은 향수냄새와 차갑고 달콤한 장국의 맛이 아직도 메밀국수를 먹을 때마다 기억난다. 그땐 꼬마인 주제에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처럼 저리도 메밀국수가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설렘에 그리도 즐거워하신 것임을 꼬마가 어찌 알겠는가.
[무비위크] 2006년 11월 13일
GiM대우선생님의 '충고와 조언' 따라 강남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