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비빔냉면의 묘미
김대우의 맛집기행(5) 필동면옥의 비빔냉면
충무로 주변은 오래전부터 영화인들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흥행이 잘되고 있거나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사람은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느릿느릿 걸어가고, 몇 번의 실패를 겪은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철지부심하며 새로운 기획안을 저쪽 손에 옮겨 잡는다. 부근 호텔의 커피숍에는 정치계를 무색케 하는 파벌의 음모가 오가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술집에서는 중학생에게나 어울릴 법한 싸움 기술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런 곳이었다, 충무로는. 그런데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 다 그렇게 뒤섞여 지내던 충무로가 예전 같지가 않다. 영화사들이 대거 강남으로 떠난 탓도 있겠지만 영화인들이 예전처럼 그리 어울려 지내지 않는 느낌도 있다.
그런 충무로에 자리 잡고 있는 필동면옥(02-2266-2611)은 우선 물냉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딘지 밍밍한 것 같으면서도 깊은 맛이 서려 있는 육수와 서걱거리는 듯 하면서도 쫄깃한 면발로 인해 물냉면의 진수를 아는 층에서는 최고의 집중에 하나로 꼽힌다. 일례로, 예전에 맛있는 음식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매일 저녁 식당순례를 일삼는 어떤 의사와 온라인상에서 친교를 나눈 적이 있다. 서로 간에 맛있다고 느낀 집들이 너무나도 일치하는 지라 혈연을 만난 것처럼 서로 모르는 집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다녀와서는 감상을 들려주기도 하다가, 한날은 내가 무심결에 필동면옥의 물냉면에 대해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컴퓨터를 통해서 싸늘한 침묵이 전해져 왔다. 잠시의 정적 끝에 ‘필동면옥의 물냉면 맛을 모르시다니 실망입니다’라는 짧은 글과 함께 그는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 이 집 물냉면에 대한 마니아들의 충성도는 그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일도 있고 해서 물냉면보다는 비빔냉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집의 비빔냉면은 정말이지 독창적이다. 별달리 양념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진하고 고소하면서도 맵다. 곁들여 주는 돼지고기와 쇠고기의 수육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면을 빨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최근 들어 들어가는 참기름과 설탕의 양이 조금 늘었다 싶은 아쉬움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집의 비빔냉면은 별미 중 별미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
이 집 비빔냉면을 먹다 보면 어린 시절 동네 초입에 있던 냉면집이 생각난다. 정말이지 무뚝뚝한 이북아저씨가 하던 집이었는데 어머니는 가끔 나를 데리고 냉면을 먹으러 가곤 했다. 비닐로 만든 조악한 발을 들치고 들어가면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러닝셔츠바람의 아저씨가 일어나 반죽을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에 물이 설설 끓고, 아저씨는 반죽을 작은 틀 안에 넣고 온힘을 다해 바를 누른다. 그러면 반죽이 실처럼 가늘게 틀에서 빠져나와 뜨거운 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도 어머니는 꼭 물냉면을 시키시고 난 비빔냉면을 시켰던 것 같다. 어머니는 가끔 귓속말로 “아저씨 귀찮으시잖아, 너도 물냉면 먹지 그래?” 하시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비빔을 시켜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그릇씩 턱턱 던져주시다시피 놓아주곤 아저씨는 다시 거리를 내다보고 앉아 있었다. 냉면 맛이 그 아저씨가 만들어 주던 것과 같아서인지 필동면옥의 무뚝뚝한 분위기도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무비위크] 2006년 12월 29일
역시, 전 물냉면이 좋아용~ +_+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