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식 ‘어슬렁’ 라이프
김대우의 맛집기행(6) 조금의 해물돌솥밥
인사동의 매력은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게 만드는 곳이라는 점이다. 인사동에 갈 때에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야 한다. 다른 전철역에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꼭 안국역을 택한다. 이유는 인사동으로 나오는 입구에 CD가게가 있는데 이 집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이 그야말로 기가 막혀서이다. 선곡도 좋거니와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스피커의 음질도 굉장하다. CD를 구경하는 척하며 밖에서 한 두 곡 정도 감상하면 정서적 준비는 완료!
우선 천천히 인사동을 아래위로 두 번 정도 왔다갔다 해본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민속품거리라면 세계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인사동도 정말 살 만한 물건이 드문 곳이다. 그러니 그저 걷는 것이다. 일본 관광객들도 보고, 엿장수 구경도 하고, 기인 흉내를 내는 사람들도 흘끔거린다. 그러다가 볼만한 전시가 있으면 한두 군데 들른다. 그리고는 정말 관광객처럼 카페에 들어가서 차를 한잔 마시는 거다. 약간은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다는 엄살에, 하지만 나른하고 쾌적한 휴가를 보내는 느긋함이 뒤섞인 그들의 표정을 흉내 내면서.
그러다 보면 정해 놓은 시간보다 훨씬 전에 약속상대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상대도 역시 나처럼 일찍 오게 된 것이다. 서로 비슷한 표정을 하고 인사동을 어슬렁거리다가 딱 마주치면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 ‘조금(02-734-0783)’이라는 식당이 제격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조금 어둑한 실내로 들어서면 밖에서 들어오는 광선의 양이 적어서인지 의외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다다미가 깔린 방에 자리를 잡고 주 메뉴인 돌솥밥을 시키기 전에, 계획보다 일찍 만나 생긴 시간들을 기념할 겸, 꼬치 몇 개와 따끈한 정종을 시킨다.
뭐 서로 그리 할 얘기가 많겠는가. 밑천이 다 드러났는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자신의 하루를 관리하고, 두툼한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인맥을 형성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한 적이 없나 잠들기 전에 반성하고 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서로에게 들켜버렸는데. 약속 하나 있다는 핑계로 일찌감치 나와서는 볼일 없는 장에 나온 촌로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것임을 서로 아는 처지에. 도시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관광객처럼 둥둥 떠다닌다는 것을 눈치채어버린 사이에 격식을 차릴 것이 뭐 있겠는가. 뜨거운 꼬치구이를 소금에 찍어 먹으며 정종 잔을 기울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주문해 놓은 돌솥밥이 나온다. 푸짐하다기보다는 깔끔한 맛이다. 곁들여 나오는 짠지와 젓갈을 조금씩 반찬삼아 후후 불어가며 먹다 보면 엄청난 양념과 모든 조미료가 뒤범벅이 된 음식에 길들여진 미각이 차츰 되살아난다. 돌솥 속에서 함께 익혀진 해산물 고유의 맛도 알 수 있고, 그 해산물의 향기를 은은히 머금은 밥의 맛도 알 수가 있다. 짠지도 산뜻하고 감칠맛 있어서 해물과의 조화가 훌륭하다. 어둑해진 인사동 거리로 나서면 워낙 일찍 만난 탓에 원래 약속 시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서로 쑥스럽게 웃으면서 ‘이런 게 시(時)테크 아닐까?’ 하고 농담도 주고받아 보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무비위크] 2007년 1월 8일
예전보다 맛이 살짝 못해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