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출 해 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정태일(인디라이터)
3월이다. 한강에 나가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전보다 2배는 많아져 있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날이 따뜻해진 것도 이유지만 자전거가 ‘친환경’과 ‘웰빙’ 트렌드를 대표하는 ‘핫’한 아이템이 된 덕분이기도 하다. 이에 나라에서는 2018년까지 전국의 해안가와 접경지역을 연결하는 3,000여㎞의 자전거 도로망을 구축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자전거 전용보험이 출시되면서 ‘자전거’는 그야 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은 증가했지만 ‘자출족’ 즉,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출하려면 평소보다 40분은 일찍 일어나야 하는 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날 야근을 했거나 회식이라도 있었던 날은 평소보다 일어나기가 더 어렵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나는 아예 가방에 자전거 전용복과 신발, 헬멧과 고글을 머리맡에 챙겨두고 잔다. 눈곱을 떼지도 않고 고글을 쓴다. 가끔은 부스스하게 뜬 머리를 정돈하기도 전에 헬멧과 쫄쫄이 복을 먼저 챙겨든다. 어차피 출근해서 샤워를 할 테고, 복장을 갖춰 입으면 티도 별로 나지 않는다는 계산 때문이다. 모양이야 어찌 되든 일단 페달을 밟아야 비로소 자출이 시작된다.
자출을 망설이는 두 번째 이유는 자전거로 도로를 나서는 게 걱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직까진 자전거 관련 교통법규가 혼란스럽고 자전거 도로는 부족해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전거는 그저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하는 일부 운전자들의 부족한 인식이다. 예전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남산 1호 터널을 넘은 적이 있다. 이륜차로 터널을 넘는 건 금지되어 있는데 미처 그걸 몰랐던 나는 출근길에 실수로 그곳에 들어갔다가 버스가 울려대는 위협적인 경적 소리에 놀라 사고가 날 뻔했다. 나와 내 몸을 합한 것의 50배가 넘는 버스가 자전거 옆을 빠르게 달리면 핸들이 흔들거려 무척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가련, 한심, 신기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자출 코스를 바꿔 리움 박물관을 지나 하이얏트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터널은 그렇다 쳐도 이륜차 통행이 허용된 일반도로에서도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를 그다지 배려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적으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한 편으로 자전거 도로가 동등한 입장으로 나 있어 안전한 자출이 보장된다. 그곳에서는 자전거가 엄연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이게 바로 유럽을 자전거로 달려본 사람들이 그곳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유럽에서 출퇴근 시간에 구름처럼 떼 지어 몰려가는 자전거의 행렬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면 자전거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아직 많은 것 같다. 자출족이 지금보다 10배는 더 많아지면 모를까 현재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곳으로 출퇴근하는 게 쉽지 않다.
어렵게 회사까지 도착했다면 이제 주차를 해야 한다. 전봇대에 아무렇게나 묶어 둘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건 이미 내 자전거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사무실 옥상에 오르거나 지하 주차장에 내려놓는다. 요즘 들어 지하철 역 주변에 자전거 주차장이 하나 둘 선보이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런 어려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는 1시간여를 달려온 땀을 씻어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샤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자출족들은 샤워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 자출사 게시판을 살펴봤다. 땀 냄새보다 강한 향수로 온몸을 무장한다는 ‘퍼퓸족’ , 샤워기 꼭지만 떼어 다니다가 화장실에서 번개처럼 해결한다는 ‘번개족’까지 다양하며, 급기야는 물티슈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만을 씻어낸다는 ‘고양이 세수족’까지 있었다. 샤워시설이 완비된 회사가 있다면 이런 어려움은 줄어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근 헬스장을 이용하도록 권하고 싶다. 샤워를 마치고 갈아입을 정장과 구두는 회사 근처에서 드라이 크리닝을 해서 미리 두어 벌 가져다 둬야 한다.
내가 이렇게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자출을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몸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1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출근하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한남동에서 회사가 있는 올림픽 공원까지 20㎞를 달리고 나면 하늘과 땅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신선한 기운을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나란 놈이 근육질의 스포츠맨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그 반대다. 172㎝에 63㎏인 작은 체구인데다가 별달리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직 군살 없이 건강한 것은 누가 뭐래도 자전거 덕분이다. 그 덕에 군대에서 행군을 할 때나, 산에 오를 때 별로 지친 적이 없다. 또한 이런 운동의 효과뿐 아니라 자신감이 생긴 게 가장 큰 소득이다. 일상에서도 힘겨운 오르막이 있으면 수월한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머리가 이해하기 이전에 몸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일 같은 시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타이어와 도로가 닿으며 4분의 4박자로 쉬쉬식 소리를 내는데, 이건 내게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노래다. 때로 상사에게 한 시간씩 꾸지람을 듣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면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 사무실에만 있었으면 좀처럼 이겨내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처럼 따뜻한 봄볕을 맞으면 자꾸만 달리고 싶다. 이렇게 한 달만 자출을 하게 되면 고질병처럼 지긋지긋하게 달고 다니던 저질체력, 만성피로는 사라진다. 자출사 불량 회원인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기약 없는 주식투자보다 자전거와 함께 하는 ‘두바퀴 행복테크’에 올인 하라고 말이다. 2010년의 행복은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온다. 자전거는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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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출이 즐거운 다섯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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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리 출근하는 습관이 생기니 그만큼 아침 시간을 덤으로 벌 수 있다.
2) 불필요한 음주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이유가 생긴다.
3) 운동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어 만성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전거를 10분 타면 41칼로리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4) 10㎞ 기준으로 한 대중교통 출퇴근 시, 연간 21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5) CO2를 발생시키지 않아, 본의 아니게(?)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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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출이 즐거운 서울의 출퇴근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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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숲~뚝섬나루터~잠실~강변~올림픽 공원
강변북로를 옆에 끼고 한강을 동서로 가르는 평지코스인데, 여름에는 잠실 선착장을 가득 메운 보트족을 만날 수 있다. 서울숲과 뚝섬에서는 잠시 쉬면서 맥주 한 잔의 여유도 가질 수 있다.
2) 이태원 ~ 캐피탈 호텔 ~ 버티고개 ~ 하이얏트 호텔 ~ 남산길 ~충무로
다소 고갯길을 오르는 게 힘들지만 그만큼 다운힐을 즐길 수 있는 게 장점. 하이얏트 호텔로 가는 길은 강북의 부촌으로 유명하다. 리움 미술관과 삼성 이건희 회장 자택이 여기에 있다. 하이얏트부터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남산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곳
월간 [샘터] 2010년 3월호
잘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