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눈만 말뚱말뚱 뜨고요.
선생님이 열심히 칠판에 쓰고 지우는걸 바라보면서요...
선생님이 열심히 목이 터져라 설명하는 것을 귀로 들으면서요...
주머니에 손넣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내 곁에 다가오는겁니다.
"너 왜 필기 안 해?? "
"마음에 세겼습니다. "
선생님께서 비웃으십니다.
몽둥이로 머리통을 칠려그래요.
그래서 슬쩍 피했습니다.
"지금 설명한 내용을 생각중인데요?"
"수업시간 내용 얘기해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 있엇습니다."
"말해봐."
"말로는 표현이 안됩니다."
"......................."
여자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계속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키가 얼마니?"
"183인데요..."
"쪼그맣네. 내 동생은 187인데..."
그리고 선생님과 사적인 이야기를 처음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절대 필기를 하지 않습니다.
공책도 안가꼬 다닙니다.
심지어 교과서도 안가지고 다녔어요.
선생님은 가끔 내 책상위에 궁뎅이를 떠억하니 올리고 앉아서 교과서를 읽곤 했습니다.
왜냐면, 책상위에 아무것도 없는 놈은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녀의 향기가 코끝에서 뇌 깊숙이 들어왔고,
내 마음에 작은 파~악 하고 ...
마치 뜨거운 콩기름에 오징어 튀김이 들어가서 파바바바팍~ 순식간에 익어가는... 그런 사랑.
아무도 눈치 못채게 그녀의 스타킹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은 눈치채고 있었죠.
바로 그녀.
겨우 미소를 억누르며 볼이 빨게지는 그녀를 느꼈을 때,
나도모르게 천장으로 향하는 눈깔 두 개.
눈깔은 이내 운동장으로...
그리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그녀에게...
졸업하던 날 나에게 편지를 한 장 전해주었던 그녀는...
항상 멍한 나때문에...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었죠.
그녀의 편지의 내용은... 절대 공개 불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건너편 신호등에 발이 묶여있던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나를 처다봤었죠.
모른척 아무 버스나 타고 떠나버리기.
그때 낙심한 걸음으로 인상쓰는 그녀는 너무 귀여웠습니다.
소풍날 관악산을 절반도 못올라가 얼굴이 노래진 그녀는... 울기까지 했었죠.
힘들다구요.
24살 그녀와 19살 나.
나머지 수업을 받다가 그만 그녀의 손을 잡아버렸지요.
근대 왜 그렇게 목이 타는지... 침이 안나오구... 가슴이 막 미어져 오는데...
내 오랜지 주스 마시려는 그녀에게 ...
"그거 내 약이니까 먹지마요."
"................ 약? 그래? ............"
그녀는 날 놀리기 시작한다.
"이거 약 맞아? 약이 색이 왜이래? 맛 좀 봐도 돼? 이거 마치 오랜지주스처럼 보이는데? 이거 뭐야? 엄마가 사줬어?"
따지긴... 그냥 그렇다면 그런줄 알았다면 더 이뻤을 텐데...
군에서 제대하고...
다시 찾아간 그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25살이니까... 그녀는 30살 쯤 되었겠지.
혹시나 찾아 헤맸던 그녀.
너무나 보고싶었던 그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그녀.
우연을 가장한 어떤 마주침...
그 마주침을 위해서 난 그녀의 뒤를 몇 개월을 밟았다.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한껏 멋을 낸 나는...
표정도 연습해보고...
목소리도 다듬고...
운동 좀 한 근육을 보여주려고 단추도 3개 풀렀다.
멀리서 그녀가 보인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그녀는 아직 나와 젊음을 불사르기에 충분하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평소 연습한 워킹을 구사했다.
슬픔을 간직한 그윽한 눈미소...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
입꼬리 한 쪽을 살짝 끌어올린 섹시함.
그녀에게 다가가서...
"보고싶었어... 사랑해. 이 말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5년이나 걸렸어. 미안해.
사랑할 준비는 됐어요? 지금 내 모습으로도 괜찮다면...?"
라고 준비한 맨트를 날리면 되는 것이다!!!
30미터 전방의 그녀... 그리고 불연듯 보이는 ... 진짜 툭 하고 튀어나온 꼬마아이.
"음마~~ 아빠 어딨쇼??"
순간...
그녀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더욱이...
그녀가 나를 보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땅을 보고 걸었을 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쓴미소가 지어졌었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3시간 정도를 걸었었다.
무표정으로...
신도림에서 공항동까지....
불연듯... 김포평야를 걷다가 신도림을 향해서 외쳤다.
" 그 때 너 나 사랑했었니?!!!! 난 미치도록 너 사랑했었어!!! 사랑해!!!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눈에서 눈물이 난다.
내일부터 취직자리 알아봐야 되니까.
때는 IMF....
감상에 젖을 시간이 아니었다.
가슴을 뛰게하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사랑할 준비는 되어있나???"
"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좋다면.... "
"미친듯이 사랑할 자신 있나???"
"상처가 두렵지 않다면.... "
우리가 진짜 그 때... 서로 좋아했을까???
아무튼... 나는 절대로 수업시간에 필기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로 교과서도 안가지고 갈꺼다.
그런대도 수업 들을 수 있나요????
전적으로 용경님 맘대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