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27 13:14:30 IP ADRESS: *.147.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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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스릴러
테드 탤리(Ted Tally, 1952-    )

[양들의 침묵]은 공포영화인가? 그렇지 않다. 만약 웨스 크레이븐 유의 범상한 공포영화였다면 그 잔혹한 연쇄살인이 자행될 때마다 스크린은 피범벅이 되었을 테고 극장 안에선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양들의 침묵]은 의도적으로 공포영화의 컨벤션을 피해간다. 관객을 놀래키기 위한 음향 내지 음악의 사용도 극도로 절제했고 풍만한 여인의 등가죽을 도려내는 장면 따위는 아예 생략되어 있다. 덕분에 관객은 그저 숨을 죽이고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외면하고만 싶었던 인간의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갈 뿐이다.

[양들의 침묵]이 아카데미 역사상 세 번째의 '빅파이브' 수상작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연쇄살인범 쫓기'라는 오래된 스릴러의 컨벤션 안에 주인공인 스탈링(조디 포스터)이 치뤄내야 하는 도저한 심리전을 녹여내었다는 데 있다. 그 심리전은 다시 자아의 안팎으로 나뉜다. 밖으로는 렉터(앤서니 홉킨스)와의 싸움이요, 안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심리전이 너무나 치열하여 정작 연쇄살인범인 버팔로 빌의 존재는 그저 무연한 객체 정도로 여겨질 정도이다. 덕분에 [양들의 침묵]은 경탄할 만큼 기품 있는 심리스릴러가 되었다. 그 공적을 전적으로 감독인 조너선 드미나 원작자인 토마스 해리스에게로만 돌린다면 테드 탤리는 무척이나 서운할 것이다.

테드 탤리는 자신의 고향이 노스캐롤라이나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이 렇게 설명했다. "LA나 뉴욕에서 태어났다면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들에게 영화는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지요. 드라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두 다 연극판으로 몰려들게 마련입니다" 예일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탤리는 한동안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연극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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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시나리오로 눈을 돌린 것은 크게 히트한 자신의 희곡 [테라 노바]와 [후터스]를 TV용 단막극으로 각색해달라는 제안을 받고부터.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을 높이 사준 영국의 영화감독 린제이 앤더슨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지만 몇년 동안이나 고쳐 쓰고 또 고쳐 쓴 이때의 시나리오는 끝끝내 영화화되지 못했다. 탤리는 그러나 그것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수업료를 내고 배워도 아깝지 않을 판에 개런티까지 받으며 일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탤리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시카고 빈민가의 흑인 신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클레멘츠신부 이야기]. 로렌스 피시번의 연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으나 따뜻한 상찬을 받았다. 그를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급부상시킨 작품은 [하얀 궁전]. 43살의 웨이트리스 수잔 서랜든과 27살의 엘리트 청년 제임스 스페이더의 러브스토리인데, 캐릭터의 묘사와 계급문제의 탐구에서 탁월했다는 평을 받았다. 자신이 2년 이상 매달려 온 시나리오의 마무리를 거장인 앨빈 사전트에게 넘겨준 제작자의 독단적 결정도 탤리는 무던하게 받아들인다. “황홀했어요. 내가 2년 동안 끙끙댔던 문제를 저토록 멋지고 간단히 풀어내다니…. 불만이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언젠가는 나도 사전트 같은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바람뿐이에요.”

앞의 두 작품이 캐릭터의 심리묘사가 빼어났던 소품이라면 [양들의 침묵]은 바로 그런 탤리의 재능을 스릴러라는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녹여낸 걸작이다. [양들의 침묵]은 시나리오작가(지망생)들에게 하나의 연구대상이다. 이 작품에서 탤리가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투르기는 기만의 몽타주. 잭 크로포드(스콧 슬렌)가 오인된 범인의 집을 덮치는 장면과 스탈링이 버팔로 빌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을 교차편집 해놓은 시퀀스인데, 푸도프킨과 에이젠슈테인 이래 면면히 발전해온 몽타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의 작품들도 모두 이 계열에 속한다. [비포 앤 애프터]와 [주어러]는 미스터리 형식의 스릴러와 집요한 심리전이 성공적으로 결합된 가작들이고, [미션 투 마스]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현란한 비주얼 위로 테드 탤리의 서늘한 심리전이 녹아들어 있는 독특한 S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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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7년 에드윈 셰린의 [클레멘츠신부 이야기](Father Clements Story)
1990년 루이스 맨도키의 [하얀 궁전](White Palace)> ⓥ
1991년 조너선 드미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 ⓥ ★★
1996년 바벳 슈로더의 [비포 앤 애프터](Before and After) ⓥ
1996년 브라이언 깁슨의 [주어러](The Juror) ⓥ
2000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Misson to Mars)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아카데미 각본(색)상 수상작

[씨네21] 2000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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