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처녀의 젖가슴
심산의 와인예찬(2)
독일의 세미스위트 와인 립프라우밀히
그때 나는 열일곱 살이었고 그녀는 열아홉 살이었다. 까까머리 고딩과 파마머리 여대생. 고딩의 집안은 사업의 몰락으로 파산지경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여대생의 집안은 울산에 있어서 그녀는 대학 앞의 작은 월세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싸가지 없는 고딩은 자기보다 두 살 연상의 그녀를 한번도 ‘누나’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을 ‘밀히(Milch)'라고 하자.
모든 첫사랑에서는 풋내가 난다. 어쩌면 비린내라고 표현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다. 그리고 황홀하다. 밀히와의 나날들도 그랬다. 당시의 나는 자고 나면 빨간 차압딱지가 하나 둘씩 늘어만 가는 집을 나서면 학교로 가는 대신 그녀의 자취방으로 들이닥쳤다. 너 왜 학교는 안 가고 또 일루 왔어? 너 도대체 뭐가 될려고 그러니? 밀히는 누나처럼 아니 누나답게 나를 타이르려 든다. 하지만 내가 되돌려주는 대답이란 여전히 되바라질 뿐이다. 너도 학교 가지마. 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돼.
오래된 기억들은 왜 흑백 스냅사진들처럼 남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연속된 동영상이 아니라 단 한 컷의 사진이다. 내가 책이 든 밀히의 핸드백을 빼앗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보인다. 그녀가 내게 바락 바락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는 한 컷이 보인다. 한번은 내가 낮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잠이 든 틈을 타서 그녀가 대학으로 내뺀 적이 있다.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악랄한 나는 그녀의 수업시간표를 확인하고 강의실까지 쫓아갔다. 내가 강의실 창 밖에서 겅중겅중 뛰면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자 밀히의 두 뺨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 마디로 쪽팔렸던 거다.
누구야? 수업이 끝나자 그녀의 동기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우루루 몰려나와 흥미롭다는듯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응, 그냥 아는 동생, 사촌동생. 밀히는 나를 복도 밖으로 밀쳐내며 그렇게 얼버무리려 했다. 철딱서니 없는 내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 쩌렁 울린 것은 그때쯤이다. 사촌동생 좋아하네! 넌 사촌동생하고도 자냐? 밀히의 얼굴이 치욕으로 굳어갔다. 나는 내친 김에 더욱 잘난 체하며 보란듯이 외친다. 나 밀히 애인이야, 우리 같이 살어. 밀히의 굽 낮은 구두가 복도 저켠으로 빠르게 사라져 간다. 기고만장한 나는 그녀를 뒤쫓아 달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야, 밀히, 너 어디 가? 너 거기 안 서?!
[img2]첫사랑의 나날들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때는 왜 그토록 집착하고 질투했으며 위악적이었을까. 어떻게 그토록 온갖 패악을 다 저지르면서도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 굳게 믿을 수 있었을까. 곰곰이 따져볼 것도 없다.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를 괴롭혔을 뿐이다. 밀히는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수도 없이 이삿짐을 싸야만 했다. 하긴 ‘사촌동생’이라는 녀석이 자취방에서 아예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데 밤마다 사랑을 하든 싸움을 하든 쌩난리 람바다를 춰댔으니 어떤 집주인이 그 꼴을 곱게 봐줄 수 있었겠는가.
내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또 다른 흑백 스냅사진 한 장. 그날도 우리는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다. 뿌연 해가 떠 있는데도 찬비가 부슬부슬 흩뿌려지던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이삿짐이라고 해봤자 리어커 하나면 충분하다. 그만큼 우리는 가진 것이 없었다. 이대 앞의 가파른 언덕길을 낑낑대며 올라가다가 문득 돌아보니 밀히가 저만치 아래에서 훌쩍 훌쩍 울고 있었다. 너 지금 이거 안 밀고 뭐해? 힘들어 죽겠는데! 밀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얼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꼼짝도 하려들지 않았다. 나는 마구 신경질을 냈을 뿐이다. 쪽팔리게 왜 질질 짜고 지랄이야! 얼렁 와서 이거 안 밀어?!
견디다 못한 밀히는 어느 날 야밤도주를 감행했다. 나는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전당포에 갖다 맡기고 곧바로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언젠가 고향으로부터 온 편지봉투에 쓰여져 있던 주소들 중 ‘울산시 약사동’이라는 글자가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포항인지 경주인지에서 내린 나는 남은 돈을 모두 털어 택시를 대절하고는 무작정 외쳤다. 울산시 약사동까지만 가주세요! 약사동이라는 곳에 내리니 통행금지 직전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누르며 그녀를 찾았다. 여기 밀히 있어요?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밀히네 집이 어디에요?
그곳은 좁은 동네였다. 세 번째 집의 벨을 누르자 잔뜩 화가 난 아저씨가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와 내 멱살을 몇 차례 흔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기 왼편에서 두 번째 집, 거기가 밀히 학생집이야. 밀히 집의 벨을 눌렀다. 그때쯤에는 이미 온 동네의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일제히 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서로 수근댈 즈음이었다. 밀히가 이윽고 자기 집 대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스윽 드러나던 밀히의 얼굴. 아마도 나는 그때 밀히가 지어보인 그 복잡다단한 표정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지겨움과 그리움, 끔찍함과 반가움, 그리고 숙명과 결단이 서로 구분할 수 없도록 몸을 섞고 있던 그 불가사의한 표정을.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그녀가 세상의 전부였던 것만은 에누리 없는 사실이다.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함께 견디어낼 수 없었던 시절들을 그녀는 견디어줬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안아줄 수 없는 아이를 그녀는 안아줬다. 내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지만 밀히는 나를 동생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사랑해줬던 것이다.
[img3]문학이란 무엇인가? 미학자는 대답한다. “문학 잡지에 실리는 것들이다.” 첫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대답한다. “네게 젖을 물려준, 엄마 이외의 첫 번째 여자다.” 밀히는, 엄마를 제외하고, 내게 젖을 물려준 첫 번째 여자였다. 제 아무리 패악을 부려댄 낮이라도 밤이 되면 나는 절망적으로 그녀의 젖가슴에 매달렸다. 그것은 달콤하고 황홀했으며 비릿하고 풋내가 났다. 첫사랑의 맛이다. 우리는 엄마의 젖을 떼면서 아이가 되고, 첫사랑의 젖을 떼면서 어른이 된다. 그리고 세상살이의 비루함과 쓸쓸함에 몸서리치게 될 때, 문득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우리를 사랑해줬던 여인들은 이미 곁에 없다.
독일 라인헤쎈 지방에 있는 보름즈 교회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값싼 세미스위트 와인을 만들어 왔다. 달콤하되 풋내가 나고 황홀하되 비릿한 느낌이 나는 이 와인의 이름은 ‘립프라우밀히’(Liebfraumilch)다. 우리 말로 풀어내자면 ‘사랑하는 처녀의 젖가슴’ 쯤 된다. 독일에서 수출되는 와인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중저가 베스트셀러인데 초보자에게도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다. 독일어에 익숙치 않은 영어권 소비자들을 위해 만들어낸 브랜드가 바로 저 유명한 ‘블루넌’이다.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와인의 브랜드에다가 ‘푸른 수녀’라는 제목을 갖다 붙이다니 그 마케팅 감각이 참으로 얄궂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내들이 줄지 않는 한 영원한 베스트셀러로 남을 것 같은 와인이다.
일러스트 오현숙[무비위크] 2006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