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귀부인의 풍미
심산의 와인예찬(5) 모에 샹동의 샴페인
공식적으로는 ‘계급사회’라는 것이 종식되었으니 이제 ‘귀부인’이라는 단어는 추억의 그림자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귀부인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예술에 대한 심미안과 교양이 뛰어나고, 걸친 옷이 최대한 맵시를 뽐내도록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 글쎄 영화 속 여배우의 이미지라면 카트린느 드뇌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같은 귀부인이라도 보다 젊고 발랄하며 귀여운 이미지가 추가된다면 오드리 헵번 정도?
살아오면서 몇 번 귀부인 비슷한 여인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물론 성형으로 얼굴을 뜯어고치고 명품으로 도배를 한 요즘의 여배우 같은 이들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귀부인은커녕 귀부인의 하녀조차도 되기 힘들겠다는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귀부인이라는 이미지를 완성하려면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다는 충만함과 여유 뒤에 아무도 근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대 고독 내지 슬픔 같은 것이 슬쩍 그늘져 있어야 한다. 요즈음 청담동 거리나 스크린 위에서 마주치게 되는 ‘유사 귀부인’들에게는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 자신의 성형된 얼굴을 좀 더 자주 카메라 플래쉬 아래 들이밀고, 자신의 명품 옷과 악세서리들을 좀 더 빨리 벗어던지고 싶어할 뿐이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귀부인은 한밤의 호남선 완행열차 안에 있었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의 고학년 혹은 중학교의 저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누구와, 어디를 향해 가느라고 그 열차 안에 타고 있었는지는 잊어버렸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은 뿌연 담배연기(그 당시에는 열차 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계란과 귤의 껍질들, 삶에 지친 표정으로 마구 욕설을 씹어뱉고 있는 거친 사내들, 뭐 그런 것들뿐이다. 이따금씩 반대편 철로로 쌩하니 지나가는 기차의 육중한 바퀴소리와 잊을만 하면 한번씩 긴 울음을 토해내어 가까스로 들었던 선잠마저 깨워버리고 말던 거친 기적소리가 사운드트랙처럼 뒤에 깔려 있는 풍경들이다.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나는 아마도 입석을 끊었는지 어디에도 궁둥이를 대지 못해 선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피곤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생면부지의 그녀가 갑자기 내 시야를 사로잡아 버린 것은. 아마도 이십대 후반쯤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이미 삼십대 초반을 넘어서버렸는지도 모른다. 한밤의 호남선 완행열차, 그런 곤궁하고 비루한 삶의 풍경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단아하고 기품 있는 용모를 한 여인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 역시 좌석을 구하지 못하여 입석표를 끊었는지 기차 통로에 힘겹게 서서 이리 저리 흔들리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고운 얼굴 위로 이따금씩 탑라이트처럼 떨어져 내리던 완행열차의 무심한 천장 조명이 지금도 생각난다.
당시의 나는 그녀를 보며 야릇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감수성 예민한 소년은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며 제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마련이다. 저 여자는 왜 혼자 이 밤중에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을까? 어쩌면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버림받고 그 상처를 못 이겨 고향땅으로 도망쳐 내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물론 허황된 공상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다. 여하튼 나는 주변의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슬픔은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 때문에 더욱 배가된다. 이를테면 ‘추락한 천사’(fallen angel)의 고단한 뒷모습을 목도하게 되었을 때의 미안함과 당혹스러움 같은 것이다.
그녀에게 나는 무슨 짓을 했던가. 물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치 승객들에게 떠밀려 그리된 것처럼 애써 가장하면서, 반 발자국씩 그녀에게 접근해나갔을 뿐이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등은 더욱 쓸쓸했다. 아마도 짙은 갈색의 재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재킷에 거의 코를 들이박다시피하고 있던 나는 순간 비로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발견했다. 그녀의 재킷 등에 긴 머리카락이 하나 붙어 있었던 것이다. 천사에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귀부인에게 이런 허점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막 그것을 떼어내려는 순간, 그녀가 문득 감았던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그때의 민망함과 쪽팔림이라니. 나는 마치 불에라도 덴양 화들짝 놀라 그녀의 머리카락을 놓아버리고 황급히 승객들 틈으로 꽁무니를 뺐을 뿐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막내동생뻘은 커녕 나이 어린 조카뻘도 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를 알아차렸고, 거기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려 했다. 그 바글대는 완행열차 통로 안에서 목을 길게 빼어 나를 바라보면서 슬핏 미소를 지어보였던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너무도 짧아 흡사 꿈 속의 한 순간인양 믿기워지지 않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나와 눈을 맞추고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생에서는 단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인 눈맞춤이었다. 그녀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다시 눈을 감고 고단한 선 잠에 빠져들어갔다. 내 볼을 발갛게 물들인 홍조가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쓰다 보니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었던 와인은 샴페인(Champagne)이다. 샴페인을 떠올리거나 마실 때면 언제나 ‘귀부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귀부인들을 찾았고, 서 너 명의 여인들을 떠올렸는데, 쓰다 보니 내 생애 최초의 귀부인에 대한 이야기로 지면이 다 차 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으로 충분할 지도 모른다. 너무 아름답고 고상하여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여인과의 짧은 눈맞춤. 그것이 샴페인이다. 그 여인이 숨겨 왔던 슬픔 따위는 뒤에 감추고 모처럼 가슴을 활짝 연채 둘러선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 이 순간을 함께 즐겨요!”라고 말할 때의 그 낭랑하고 즐거운 목소리. 그것이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딸 때 듣게 되는 그 경쾌한 개봉음(開封音)이다.
[img2]샴페인은 예로부터 부와 성공 그리고 축하의 상징이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샴페인을 딴다. 누군가 결혼을 하고 승진을 하고 상을 타고 대박을 터뜨렸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터뜨리는 와인이 바로 샴페인이다. 요즘에는 세계 전역에서 개나 소나 다 자기들이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다가 이 이름을 갖다 붙이지만 제대로 된 샴페인이란 프랑스 샹판느(Champagne)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만을 뜻한다. 샹판느에서도 가장 유명한 샴페인 제조사는 물론 모에 샹동(Moet et Chandon)이다. 세계 최고의 샴페인이라 칭송받는 동 페리뇽(Dom Perignon)도 바로 이 모에 샹동에서 만든다. 와인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거의 경외의 대상이 되어 ‘동선생’ 혹은 ‘동여사’라고 불리울 만큼 빼어난 걸작이다.
삼십여년 전 호남선 완행열차에서 단 한번의 눈맞춤을 나누고 스쳐 지나갔던 그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슬픔은 잠시 머물다 갈 존재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그 이후에라도 한껏 흥겨운 마음으로 샴페인을 따는 날들이 많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연말연시에 판매량이 급증하는 와인이 샴페인이다. 나도 모에 샹동을 한 세트(12병) 들여놓았는데, 김대우의 영평상 석권기념으로 너 댓 병을 따고 심산와인반 송년파티로 서너 병을 땄더니 벌써 바닥이 보인다. 어찌되었건 샴페인을 딸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니 기분 좋게 웃을 일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새해에는 샴페인 딸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러스트 오현숙[무비위크] 2007년 1월 1일
저는 개인적으로 저 스스로에게 축하한다는 생각으로 마셨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