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간 그녀
심산의 와인예찬(6) 메를로 단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
그녀는 조용하고 은근했으며 부드러웠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녀는 오랫동안 풍경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눈에 띄게 되는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대학에 적(籍)을 두지 않은 채 재야에서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작은 스터디그룹에 함께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터디가 거의 반 년 가까이 지속된 다음에야 문득 그녀는 내게 ‘발견’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메를로(Merlot)라고 해두자.
메를로와의 나날들 역시 희미한 기억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지각한 내가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모임은 이미 파한 다음이어서 낭패한 채로 돌아서려는데 카페의 어두운 한쪽 구석에 그녀 홀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개차반으로 취한 내가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 어느 허름한 여관에 내동댕이쳐졌을 때 머리맡에 자리끼를 놓아주던 그녀의 옆얼굴도 퍼뜩 떠오른다. 언젠가 메를로가 마지못해 빌려준 노트를 들여다보다가 그녀가 손으로 쓴 연필 글씨가 참으로 정갈하여 새삼스럽게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
메를로는 별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수줍어한다던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가 아니다. 이따금씩 그녀가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면 좌중이 조용해졌다. 질 들뢰즈를 그런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이나 다름 없어요. 혹시 자크 라캉의 다른 책도 읽어 보셨나요? 누군가가 그녀를 반박할 때면 메를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좀 더 공부해본 다음에 다시 말씀 드릴께요. 그러면 ‘저 잘난 맛에 사는’ 우리 같은 인간들은 이제 그녀를 토론의 열외로 밀어놓고 제 멋대로 입에 침을 튀기며 언성을 높여가곤 했다. 그럴 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홀로 술값을 계산하고 나가는 사람은 물론 언제나 메를로였다.
메를로가 빠진 수련회는 일종의 악몽이었다. 미셸 푸코를 여러 권 읽었다고 해서 예약도 안한 펜션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쌀은 있지만 반찬을 준비해온 사람은 없었고 기차역이 부근에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열차시간표를 미리 파악해온 사람도 없었다. 말꼬리를 잡고 인신공격으로 치닫던 토론도 지겨워질 즈음 입맛이 확 도는 신 김치와 더불어 라면을 끓여 내놓는 사람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새벽에 잔뜩 불쾌해진 채로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현대철학이고 나발이고 다 짜증스러운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날 새벽 나는 메를로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그리워.
[img1]그 문자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 보니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듯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 무심코 집필실로 들어선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당혹했다. 혹시 남의 방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말끔하게 청소되고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메를로는 나를 대신하여 국회도서관을 샅샅히 뒤진 끝에 두툼한 자료집을 새로 편집하고 제본하여 내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나는 그 자료집을 뒤적여 그럴싸한 원고를 써내며 이름을 팔았고, 메를로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뿐이다. 메를로는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내 삶 전체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을 나눈 다음의 일이다. 내게 등을 보인채 누워 있는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메를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더니 물기가 묻어났다. 깜짝 놀라 그녀를 돌려 눕히자 메를로는 눈물로 여울진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힘들어서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원망도 미움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인데,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가 봐요. 내가 무언가 위로의 말을 찾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냈다.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요. 나는 그녀에게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메를로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으며 나직하게 말을 맺었다. 우리 아무래도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스캔들이다. 결혼한 사람의 애인이 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그 사랑을 남들 앞에 떳떳이 드러내 놓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따금씩 생각해봐요, 당신의 삶에서 나는 무엇일까. 어떤 때는 조연도 아니고 단역쯤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비참해져요. 메를로는 처연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어요. 그 강물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그녀는 그렇게 나를 떠나 태평양을 건너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녀 삶의 눈부신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메를로(merlot)의 고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프랑스의 보르도라는 설도 있고 이탈리아의 베네토라는 설도 있다. 보르도 중에서도 메독에서 메를로는 언제나 조연이었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보좌하여 그것의 거칠고 떫은 맛을 부드럽고 그윽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주요 임무인 것이다. 덕분에 오래된 와인 매니아들은 메를로 단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을 내심 경멸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를 보면 주인공인 마일즈(폴 지아마티)가 “싸구려 와인은 절대 못 참아!”라고 바락 바락 악을 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싸구려’라고 제멋대로 번역(!)된 영어 원문이 바로 ‘메를로’였다. 미국식 발음으로는 ‘멀롯’이다. 이 장면의 저변에는 요컨대 메를로 따위는 절대로 주연이 될 수 없다는 인식 같은 것이 깔려 있는 셈이다.
[img2]하지만 주어진 환경(테루아르)을 바꾸면 운명 역시 바뀐다. 보르도는 지롱드 강을 중심으로 좌안과 우안으로 나뉜다. 메독에서 지롱드 강을 건너면 폼므롤과 쎙테밀리옹이다. 쎙테밀리옹을 대표하는 샤토 오존(Chateau Ausone)에서 메를로는 공동 주연으로 올라선다. 카베르네 프랑과 더불어 50%의 지분을 갖게 된 것이다. 폼므롤에서는 완벽한 단독 주연으로 변신한다. 비공식적으로 메독의 1등급 그랑 크뤼들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되는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는 메를로 100%로 만들어진 세계 최고의 와인이다. 나는 아직 샤토 페트뤼스를 맛보지 못했다. 한병 당 가격이 웬만한 대졸자의 한달 월급을 훨씬 웃도는 까닭이다. 내가 맛본 최고의 메를로 단일품종 와인은 레디가피(Redigaffi)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에서 만든 이 와인은 단 한 모금의 맛과 향으로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세상에, 그 부드럽던 메를로가 이토록 강렬하고 농밀해질 수 있다니!
영원한 조연은 없다. 그리고 부드러움보다 강한 것은 없다. 메를로가 내게 가르쳐준 진실이다. 메를로는 지롱드 강을 건너 폼므롤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토스카나에서,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감격적인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이따금씩 다른 후배를 통하여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여전히 현대철학을 탐구하고 있다는 메를로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헬로 메를로, 너는 나의 그늘에 숨어 눈물 흘리기보다는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에서 활짝 미소 짓는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여인이야. 네 부드러움 앞에서는 질 들뢰즈도 미셸 푸코도 속수무책으로 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진정한 속내를 보여줄 거라고 믿어. 우리가 다시 만나 반갑게 웃으며 마주 앉을 수 있는 그런 날을 맞을 수 있을까. 약속하지. 내가 언젠가 샤토 페트뤼스를 딴다면 바로 그날일 거야. 눈부신 홀로서기에 성공한 너를 위해 건배.
일러스트 이은[무비위크] 2007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