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굵은 남자들의 로망
심산의 와인예찬(12) 칠레의 몬테스 알파 시리즈
함께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고 하여 모두 다 술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멋진 술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주종과 주량이 엇비슷해야 되고,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술버릇이 좋아야 한다. 아니, 술버릇에 대해서는 조금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서로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면 술버릇은 나빠도 된다. 이를테면 오십보 백보로 술버릇이 나쁜 두 사람끼리는 좋은 술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멋진 술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다. 녀석의 이름을 알파(Alpha)라고 해두자.
알파는 록커였다. 한창 시절의 로버트 플랜트처럼 머리를 기른 알파가 찢어진 청바지를 꿰입고 무대 위에 올라가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샤우팅 창법으로 제가 만든 노래를 불러제낄 때면 누구라도 뻑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녀석이 노래를 부를 때면 나는 언제나 아찔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저러다 오장육부가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닐까. 저러다 제 영혼마저 빠져나오면 어떡하지. 공연을 끝낸 록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시원한 맥주다. 녀석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 역시 장관이었다. 마치 굵은 장마 빗줄기들이 뚜껑 열린 맨홀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듯 콸콸콸 소리를 냈다. 웬만한 주량을 가진 사내는 그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실 수 없다. 내가 녀석과 친해진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명의 록커와 가난한 작가의 재정 상태라는 것이야 물어보나마나 빤하다. 우리는 우리가 마셔대는 그 엄청난 양의 맥주값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제법 마셨다 싶을 만큼 취하고 싶어질 때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소주였다.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하염없이 소주병을 눕혀가는 일은 더 없이 즐거운 일이다. 맥주는 시끄러운 록 바(Rock Bar)에 앉아 마시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소주는 찌그러진 선술집에 맞다. 음악 역시 장소와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인지 녀석은 찌그러진 선술집에서 소주를 마실 때면 언제나 처량한 뽕짝들을 불러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객석에 앉아서 듣는 그의 록보다 선술집에 앉아서 듣는 그의 뽕짝을 훨씬 더 좋아했다.
대구의 언더그라운드 록커였던 그가 서울의 블루스밴드 보컬로 출세(?)를 하자 새로운 술친구가 한명 더 늘었다.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을 맡고 있던 베타(Beta) 형이다. 당시 우리의 단골집은 이대 후문 근처에 있는 그야말로 찌그러진 선술집이었는데, 그곳의 주모는 우리가 덜컹거리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밀며 들이닥치면 지레 손사래부터 치곤했다. 하이고 이 화상들아, 대낮부터 또 얼마나 술타령을 하겠다고! 말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했지만 표정마저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첫 번째 대사 역시 늘 똑 같았다. 이모, 안주는 이모가 알아서 대충 해주고, 일단 소주, 시야시 잘 되고 양 많은 놈들만 골라서 한 짝 가져 와! 소주 한 짝이면 스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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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장 아름다웠던 술자리의 친구들이 그들이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누가 먼저 전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이런 날 술 안 마시면 벌 받는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치며 대낮부터 이모집에 모여 앉았다. 시어터진 묵은 김치 한 조각과 소주 한 사발 그리고 가슴을 후벼 파는 옛노래들. 베타 형은 소주를 한 사발 들이킬 때마다 처연한 목소리로 서글픈 노래들을 하염없이 흥얼거렸다. 빗속의 연가, 어둠 그 별빛, 떠나가 버렸네. 알파는 무엇이 그리도 슬펐던지 눈물마저 글썽거리며 흘러간 옛노래들을 끝없이 이어갔다. 황성옛터, 동백아가씨, 바다가 육지라면. 나 역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마치 잠겨지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의아한 풍경이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슬픈 노래들을 부르며 하염없이 술을 마셨을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찌되었건 소주는 끊임없이 몸 안으로 들어왔고, 눈물은 끊임없이 몸 밖으로 흘러 나왔다. 당시 베타 형은 30대 초반이었고 알파와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우리가 젊음을 슬퍼한 건지 삶 그 자체를 슬퍼한 건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날 우리는 아마도 두 짝 가까운 소주병들을 눕힌 것 같다. 그리고는 기절해버렸다. 마치 꿈결처럼 아련하게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얼마 후 베타 형은 세상을 떠났다. 간암이다. 남겨진 우리는 기절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 이외에는 달리 베타 형을 추모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알파는 그 이후에 베타 형의 공백을 메꾸고 그를 뛰어넘어 홀로 서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베타 형을 기리는 추모영화에 주연을 맡음으로써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집 앨범을 두어 장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간단하게 말해 대중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낙담한 그는 대구로 낙향했고 이후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와의 만남이 뜸해진 것은 이때쯤이다. 우리는 거리 상으로도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주종마저 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위스키 쪽으로 기울었고 나는 와인에 귀의한 것이다. 주종이 달라지면 좋은 술친구로 남기 어렵다. 우리는 서로의 주종에 다가가려 애썼다. 나는 알파 덕분에 기네스 흑맥주에다가 잭 대니얼을 투하(!)한 폭탄주를 제법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와인 근처로 오려 하지 않았다. 너무 싱겁고 맹숭맹숭하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알파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일이다. 그가 이대 후문의 이모집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대뜸 알아챘다. 그는 베타 형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모집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대신 조악한 디자인의 다세대 주택이 떠억하니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 뿐이다. 아쉬운 대로 우리는 엇비슷한 분위기의 선술집을 찾아내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한참을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알파가 자신의 가방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뜻 밖에도 와인이었다. 너 와인 별로 안 좋아 하잖아? 내가 의아해서 묻자 그는 피식 웃었다. 누가 선물로 줬는데, 너 줄려고 가져왔다. 그가 내민 두 병의 와인들은 모두 몬테스 알파(Montes Alpha) 시리즈였다. 하나는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이었고, 다른 하나는 몬테스 알파 M이다. 내가 와인을 따려하자 그가 말렸다. 야 그런 건 어디 근사한 데 가서 너 혼자 마셔.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동치미를 담았던 사발에 와인을 콸콸 따랐다. [img3]잔뜩 미심쩍은 표정으로 사발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알파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햐 이거 곱창하고도 제법 어울리는 거 같은데?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래된 와인처럼 묵은 근사한 술친구가 이제 막 다시 태어나려는 순간이다.
하지만 알파와 즐겁게 웃고 떠들며 와인을 마신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며칠 전에 알파는 죽었다. 간암이다. 그를 보내려 대구로 내려갈 때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술 먹고 기절해 버려야지. 도저히 제 정신으로는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것일까. 생각보다 술을 덜 마신 대신 생각보다 많이 울었을 뿐이다. 하이 알파, 네가 묻힌 그곳은 어떠냐? 팔공산 자락 아래 양지 바른 언덕이니 봄볕이 따사로울 것 같구나. 네 위로 뻗은 잘 생긴 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네 전생의 술친구는 남겨진 삶이 막막하여 오늘도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단다. 내가 살아생전에 네게 해준 것 하나 없는 못된 친구였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하지. 언젠가 팔공산에 오르게 되면 너를 머금고 있는 나무를 찾아가 그 밑둥에 와인을 흠뻑 따라줄께. 네가 처음으로 맛있다고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바로 그 짙은 핏빛의 근사한 와인을.
일러스트 이은
[무비위크] 2007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