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청춘의 헛손질
기타노 다케시 [키즈리턴]
학교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단지 '문제아'라고 뭉뚱그려 부를 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름도 있고 개성도 있다. 마사루(가네코 켄)는 껄렁대는 떠벌이고,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소심한 샌님이다.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시시한 반항이나 일삼던 이 아이들은 어느날 멋 모르고 삥을 듣었다가 권투선수하는 녀석에게 끌려가 죽도록 얻어터진다. 덕분에 녀석들은 돌연 자기가 해야할 일을 깨닫는다. 바로 권투선수가 되는 것이다.
마사루에 끌려 도장을 찾은 신지는 그곳에서 엉뚱하게도 자신에게서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견한다. 학교에서 일진으로 통하던 마사루를 링 위에서 KO시켜버린 것이다. 마사루는 도장을 떠나 야쿠자 똘마니가 된다. 신지는 전도유망한 신인 권투선수로 성장해나간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라면 이쯤에서 그 끝이 보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성공하고 사랑을 얻거나 한명쯤은 비참하게 죽는 것이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1996)은 그런 할리우드 장르영화식 플롯을 아무렇지도 않게 배신한다.
마사루는 야쿠자 세계에서도 허풍만 떨다가 쫓겨난다. 신지는 퇴물 권투선수의 유혹에 빠져 술을 입에 대다가 데뷔전에서 허망하게 쓰러진 후 링에서 내려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온 두 녀석은 텅 빈 운동장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며 저 유명한 마지막 대사들을 읊조린다. "우린 정말 끝난 걸까?" "바보야. 우린 아직 시작도 안한 거라구" 기타노 다케시 역시 영화 속 캐릭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구"
[키즈 리턴]은 권투영화라기보다 성장영화다. 이 영화 속의 권투는 외로운 청춘의 헛손질이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고 모든 것은 서투르기만 하며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외로운 청춘들이 얻어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 허공을 향해 내뻗는 서글픈 헛손질. 그 적나라한 육체의 시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청춘의 원초적인 슬픔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기타노 다케시만한 감독도 없다. [키즈 리턴]은 일본이 낳은 이 르네상스적 예술가가 일찍이 세상에 내놓았던 처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겨레] 2004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