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5-30 03:22:44 IP ADRESS: *.146.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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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

할리우드가 팔아먹은 히말라야

마틴 캠벨 [버티컬 리미트](2000)

 

금년은 K2 초등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작년에 세계적인 열기 속에 치뤄졌던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 기념식과 비교해보면 일반인들의 관심은 지극히 낮다. 해외에서는 초등의 당사자인 이탈리아산악회의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을 뿐이고, 국내에서는 8천미터 14좌를 모두 완등한 한완용이 K2 베이스캠프 청소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해발고도가 곧 등반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의 최고봉은 에베레스트이지만 산악인들의 최고봉은 K2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험준하며 상시적인 악천후에 휩싸여 있어 등반이 극히 까다로운 산이 바로 K2다. 현지인들은 이 산을 '하늘의 절대군주', 산악인들은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 부른다. 이 하늘의 절대군주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카라코람 산맥의 중앙 깊숙이 숨어 있어, 그를 힐끗 알현하기만 하려 해도 목숨을 건 대장정을 감행해야 한다.

마틴 캠벨 감독의 [버티컬 리미트](2000)는 신이 지상에 세워놓은 이 위대한 조각품을 안방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드라마는 빈약하고 스토리의 사실성 역시 현저히 떨어지지만 스펙터클만은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든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에 해당하는 거벽등반 조난장면은 그 아찔한 현장감으로 인하여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이 작품이 산악영화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인 블록버스터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첨단영화 기법 덕분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영화인이기 이전에 산악인쯤으로 여기는 나같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현란한 영화기법들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헐리우드가 '산악인들만의 숨겨진 성지'마저 그럴싸한 액션과 선정주의로 포장하여 시장에서 팔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영화 속에 넘쳐나는 그 숱한 죽음들에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K2가 죽음을 부르는 산이라면, 할리우드는 죽음을 팔아먹는 악질상인인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그나마 산악인에 가장 가깝게 묘사되고 있는 캐릭터는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고 의문의 조난사고로 아내마저 잃은 베테랑급 고산등반가 몽고메리(스코트 글렌)다. 그는 스스로 자일을 잘라 영화 속의 악인과 함께 죽어가며 나직하게 진언을 외운다.

"옴 마니 반메훔!"

[한겨레] 2004년 5월 12일자




 

백소영

2006.06.01 20:54
*.44.147.215
아내에 대한 그의 마음에 감정이입 200% 됐던.. 몽고메리 캐릭터 정말 멋졌어요!!
profile

심산

2006.06.11 21:28
*.147.6.178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니까...^^

조현옥

2007.08.19 05:30
*.62.89.4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만 보나봐요. 산악 등반에 대해 청맹과니인 저로서는 그저 스펙타클에 입을 다물지를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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