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되찾는 마법의 공간
필 올든 로빈슨 [꿈의 구장](1989)
아이오와에 살고 있는 평범한 중년 농부 레이(케빈 코스트너)는 어느 날 자신의 옥수수밭을 거닐다가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을 만들면 그가 올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지만 반복되는 계시 끝에 '그것'이란 야구장이고, '그'란 전설 속으로 사라져간 야구선수라는 비밀을 풀어낸 레이는 더욱 황당무계한 짓을 저지른다. 실제로 자신의 옥수수밭을 밀어버리고 그곳에 아무도 찾아올 리 없는 허름한 야구장을 만드는 것이다.
필 올든 로빈슨 감독의 [꿈의 구장](1989)은 황당한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전해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메시지는 그 황당함을 간단히 덮어버리고도 남는다. 레이가 만든 '꿈의 구장'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판타지의 공간이다. 이 특별한 공산에서는 과거와 현실이 뒤섞이고, 이승과 저승이 넘나들며, 현실과 이상이 서로를 껴안는다. 누가 이 공간을 찾는가? 꿈을 저버렸거나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거나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속였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불행한 영혼들의 단 한가지 공통점은 그들이 야구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1919년의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야구도박사들과 결탁해 승부조작에 가담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악질 구단주에 대한 은밀한 보복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이 희대의 추문은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되어 선수들은 평생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게 된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억울했던 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맨발의 조'(레이 리오타). 데뷔하던 해의 평균 타율 0.408로 2004년가지도 깨어지지 않은 루키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1919년에도 평균 타율 0.375를 지켰고 단 하나의 수비실책도 범하지 않았는데도 이 승부조작 사건과 연관되어 '명예의 전당'의 입성을 거부당했던 것이다.
윌리엄 패트릭 킨셀라의 실명소설 [맨발의 조]를 토대로 만들어진 [꿈의 구장]은 이 불운한 저승의 야구선수를 마법의 공간으로 불러내어 상처를 어루만지고 못다한 꿈을 펼쳐 보이게 한다. 그 위안과 상생의 꿈이 참으로 따뜻하다. 단역에 불과하지만 더 인상적인 캐릭터는 '문라이트' 그레이엄(버트 랭커스터). 1905년 9회초에 수비수로 교체되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나 결국 단 한번도 타석에 서보지 못한 채 야구장을 떠나야했던 그는 남은 평생을 의사로 살아가며 가슴앓이를 겪어야 했다. 이 불행한 영혼을 타석에 세울 수 있는 곳도 오직 '꿈의 구장'뿐이다.
[한겨레] 2004년 4월 28일자
이티만큼 가슴 따뜻하고 흐뭇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