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한계 너머로 달려간 사람
로버트 타우니 [톰 크루즈의 위다웃 리밋]
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생을 시작하는 청소년부터 황혼의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간편한 복장에 러닝슈즈만을 신고 거리를 내닫는다. 내가 살고 있는 여의도의 고수부지 공원에서는 거의 매주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하릴없이 공원을 배회하다가 나를 지나쳐 휙휙 달려가는 사람들을 볼라치면 나만 뒤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마저 느낄 지경이다. 왜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쯤되면 달리기가 거의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듯 하다.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 ‘달리는 사람’으로 가장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스티브 프리폰테인인 것 같다. 그는 100미터를 달리는 단거리 선수도 아니고 42.195㎞를 달리는 마라토너도 아니다. 그가 사랑한 길이는 중거리다.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2천미터에서 1만미터까지 모든 중거리 종목에서 그때까지의 미국신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운 전설적인 스타였다. 체육 명문 오레건대학 육상팀의 프리폰테인은 코칭스태프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달려 ‘프리’라는 시기에 찬 애칭을 얻었다. 그러다가 1976년 몬트리얼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던 24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연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전설이 될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톰 크루즈의 위다웃리밋]은 바로 이 실존인물 스티브 프리폰테인을 다룬 영화다. 하지만 제목만 보고 속지 말 것. 아무리 두 눈을 부라리며 화면 구석 구석을 보아도 톰 크루즈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제작자로서 참여했을 뿐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감독 때문이다. 그 옛날 [차이나타운]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던 원로 시나리오작가 로버트 타우니의 최신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나의 흥미를 돋구었던 것이다.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을 써준 로버트 타우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제작을 결정했다는 후문이 있으나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영화 속의 프리(빌리 크루덥)는 정말 자유로와 보인다. 그는 베테랑 육상코치 빌(도널드 서덜랜드)의 훈련 스케줄을 완전히 무시하며 매순간 있는 힘을 다해 내닫는다. 프리는 어쩌면 기록에조차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도대체 왜 그리도 빨리 달리고 싶어 했을까? 프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서." 달리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다. [위다웃리밋]은 그 경계선 너머로 달려가버린 사람의 뒷모습을 담담히 보여준다.
[한겨레] 2003년 6월 3일자
달리면 엔돌핀이 돌고 신이 나지만 경주는 싫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은 그 경주 조차도 즐기는 사람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