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에 인생을 걸다
로브 코헨 [분노의 질주](2001)
스트리트 레이싱이란 도심의 밤거리에서 벌어지는 불법 자동차경주다. 그 중의 한 갈래로 분류되는 드래그 레이싱은 직선으로 곧게 뻗은 400미터를 질주한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마자 그야말로 불을 뿜으며 거리를 내닫는 이들의 목표는 10초 벽을 깨는 것. 자동차 폭주족들의 맏형 도미니크(빈 디젤)는 그 10초를 위해서 산다. "난 드래그 레이싱에 내 인생을 걸었어. 다른 건 어찌되든 상관없어. 그 10초 동안 난 자유로와.’"
로브 코헨 감독의 영화 [분노의 질주](2001)에는 폭발할 듯한 젊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체제에 대한 반항과 한계에 대한 도전은 예로부터 젊음의 전유물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는 온통 그들의 차지다. 그들의 심장 박동을 닮은 강렬한 하드록과 신랄한 힙합은 영화에 더 없이 잘 어울린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주기도문을 외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이트로 직접분사포트와 볼베어링 터보 그리고 티타늄 밸브스프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는 레이서들로 구성된 특수절도단을 검거하기 위하여 폭주족 사회로 위장 잠입한 사복경찰 브라이언(폴 워커)의 시선을 따라간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플롯이다. 필요에 의해 접근한 여인 미아(조나다 브류스타)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엔 그들 집단에 동화되어 간다는 설정에 이르면 모든 것이 확연해진다. [분노의 질주]는 [폭풍 속으로]의 플롯을 그대로 베꼈다. 그러나 청출어람이 아니라 버전다운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단 하나, 엄청난 속도감의 카 액션 장면들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하다.
한국계 할리우드배우인 릭 윤의 등장도 반갑다. 그는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악한 조니 역을 맡았지만 나름대로의 카리스마를 맘껏 뽐낸다. 빈 디젤은 이 영화로 너무 ‘떠버려’ 몸값이 급상승하는 바람에 속편인 [패스트 & 퓨리어스 2](2003)에서는 그 멋진 모습을 볼 수 없다. 속편은 경찰에서 해고된 브라이언이 마이애미로 근거지를 옮겨 본격적인 스트리트 레이서로 변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보다 깔끔한 장르영화가 되었지만 전편이 갖고 있던 ‘거친 청춘의 숨결’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체제 안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제 아무리 반항적이었던 청춘도 그렇게 유순하게 변해가게 되는 것일까?
[한겨레] 2003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