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6-01 14:16:34 IP ADRESS: *.147.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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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깨고 달려나가자!

피터 예이츠 [브레이킹 어웨이](1979)

 

열아홉 살엔 누구나 경계인이 된다. 청소년기는 벗어났으나 아직 성인은 되지 않은 시기, 혹은 뾰족한 대안은 없으나 어쩐지 기성사회에 편입되기는 싫어 막무가내로 뻗대는 시기. 이 시기에 저 홀로 사회 속에 내동댕이 쳐지는 것 만큼 난감한 순간도 따로 없다. 덕분에 열아홉 살이란 청춘영화의 영원한 테마가 된다. 김성수의 [비트]가 위태롭게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이 불안한 영혼들을 태웠다면, 피터 예이츠의 [브레이킹 어웨이](1979)는 오직 육체의 힘만으로 나아가려는 자전거 위에 이 출구 없는 영혼들을 태운다.

데이브(데니스 크리스토퍼)는 한심한 열아홉 청춘이다. 고등학교는 가까스로 졸업했지만 그 이후론 도무지 풀리는 일이 없다. 대학진학에는 실패했고 취직도 안되며 군대에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인디애나주의 대학도시 블루밍턴에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문이다. 데이브에게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은 엉뚱하게도 이탈리아다. 그는 이탈리아 자전거팀의 광팬으로서 그들처럼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그는 짝사랑하는 여대생에게 자신이 이탈리아 교환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온갖 해괴한 소스를 버무려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먹고, 멘델스존 교향곡 제4번 [이탈리아]의 4악장을 줄기차게 듣는다.

유고 출신의 시나리오작가 스티브 테시크는 청춘영화라는 낯익은 장르 속에 계급문제와 실업문제 그리고 자기정체성의 발견이라는 힘겨운 주제를 솜씨 좋게 담아내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브레이킹 어웨이]는 그 이외에도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등의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빼어난 작품성을 갖춘 영화다. 피터 예이츠의 섬세한 연출 못지 않게 인상적인 것은 패트릭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나 비발디의 [사계]는 이 곡들이 애당초 자전거 경주장면을 위하여 작곡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감동적인 영상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브레이킹 어웨이]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 뛰쳐나가 자전거를 타고 싶어진다. 때마침 내일은 ‘전국적인 쓰레기 청소를 위해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다. 일찌감치 일어나 ‘쓰레기 청소’를 해치운 다음 한결 깨끗해진 내 나라 내 강산을 자전거로 마음껏 달린다면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브레이킹 어웨이’가 뜻하는 바 그대로 장벽을 깨부수고 달려나가자!

[한겨레] 2004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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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06.01 14:20
*.147.6.178
이 글을 쓴 것은 위에 보다시피 2004년 4월 13일이었습니다. 당시는 '노무현 탄핵사태' 직후의 국회의원 선거일이었지요. 저는 제게 주어진 지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국적인 쓰레기 청소를 하자!"며 일종의 선거 캠페인(?)을 벌인 셈입니다...그때는 한나라당이 와장창 무너졌죠. 그런데 고작 2년여가 지난 오늘 아침, 한나라당은 전국을 휩쓴 '압도적 유일당'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월 참 무상하지요? 그 세월 동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도대체 뭘 한 걸까요...?

백소영

2006.06.01 15:59
*.44.147.215
기본만 했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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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2006.06.04 19:00
*.201.18.105
저는 이 영화를 위의 기사를 쓸 당시에 TV로 봤는데, 찾아봤더니 1980년에 국내에서도 개봉했더군요. 당시의 영화포스터 사진을 구해서 이렇게 올립니다...^^

백소영

2006.06.23 02:08
*.44.147.104
와.. 멋진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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