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스포츠영웅
마이클 만 [알리](2001)
경기는 시시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호언장담은 추억 속의 유행가였을 뿐이다. 알리는 경기 내내 가드로 얼굴을 가리고 얻어맞기만 했다. 하지만 너무 지루하여 하품이 나올 즈음 경천동지할 반전이 일어났다. 알리가 돌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더니 포먼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승부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무려 3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포먼이 쓰러질 때의 그 항공모함이 침몰하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다. 그것은 홍수환의 4전5기와 더불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명승부였다.
내가 알리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의 일이다. 쏟아 붓는 듯한 말투와 당돌한 자신감 그리고 현란한 푸트워크는 알리라는 복잡한 다면체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반전운동의 상징이었고 흑인민권운동의 대변자였다. 미국을 지배하는 백인주류사회에서 볼 때 그는 차라리 일종의 악몽이다. 알리는 포먼과의 명승부를 벌이기 10년 전인 1964년 세계헤비급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될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의 [알리](2001)는 이 격동의 10년 세월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알리 역을 맡은 배우는 래퍼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윌 스미스인데, 그는 알리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 커 오랫동안 이 역할을 맡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알리 전성기의 실제 코치였던 안젤로 던디(론 실버)가 영화 전체의 권투자문을 맡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어째서 CNN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영웅’으로 무하마드 알리를 첫 손가락에 꼽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한겨레] 2004년 3월 10일자
진정한 챔피언은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