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의 유혹에 사로잡힌 영혼들
뤽 베송의 [그랑블루](1988)
클라이밍이 높이를 추구한다면 다이빙은 깊이를 추구한다. 수직의 세계에 탐닉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양극단에 위치해있는 거울의 양면과도 같다. 클라이밍이 암벽등반. 고산등반. 거벽등반. 혼합등반 등으로 나뉘듯 다이빙 역시 다양한 갈래로 세분화 된다. 스노클링. 스킨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이 모두 다이빙의 한 갈래들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가장 극한적인 도전은 언제나 프리다이빙에 집중되어 있다. 프리다이빙이 추구하는 것은 극히 단순하다. 인간은 산소통의 도움 없이 과연 얼마나 깊은 바다 속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
국외자의 처지에서 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다.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게다가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은 살인적으로 높아지며 시계 제로의 암흑 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한마디로 그곳은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다이버들은 언제나 ‘그 너머’를 꿈꾼다.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1988)는 일반인들에겐 낯설 수밖에 없는 이 프리다이버들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증언한다.
영화는 어린 시절 친구이자 라이벌인 엔조(장 르노)와 자크(장-마르크 바르)가 평생에 걸쳐 벌인 다이빙 경쟁을 다루고 있다. 양복 정장을 입은 두 친구가 호텔 풀장 밑에 가라앉은 채 와인병을 들이켜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크가 결국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고 돌고래를 따라 심해 속으로 사라져가는 마지막 장면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결말이다. 영화 속 캐릭터인 자크의 실제 모델은 프랑스의 다이버 자크 마욜이다. 그는 1976년 세계 최초로 산소통 없이 해저 100미터를 잠수 한 뒤 살아 올라온 전설적인 다이버였는데,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천수를 누리다가 이태 전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주 이 양극단의 세계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미국의 여성다이버 타냐 스트리터는 3분 58초 만에 해저 122미터를 잠수하는데 성공하여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그가 카브리해에서 인간한계 너머의 깊이를 추구하던 바로 그 시각, 한국의 클라이머들은 키르기스스탄의 악수 북벽(5239m)에 매달려 높이를 추구하고 있었다. 타냐 스트리터는 살아서 올라왔다. 박기정 대장과 최영선 대원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다. 현실은 영화보다 쓰라리다. 박대장은 나의 오랜 지기였다. 삼가 그들의 명복을 빈다.
[한겨레] 2003년 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