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삼류복서의 추억
마이클 세레신의 [홈보이]
미키 루크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 중반이었다. [이어 오브 드래곤](1985)과 [나인 하프 위크](1986)의 전 세계적인 흥행은 그를 돈방석 위에 올려놨다. 곧이어 제작된 [엔젤하트](1987)에서는 최고의 연기자라는 상찬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인생의 절정기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엔젤 하트의 제작도중 당시의 촬영감독이었던 마이클 세레신과 엉뚱한 수작을 벌인다. 내가 각본과 주연을 맡을 테니 당신이 감독으로 데뷔하여 내 옛날이야기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미키 루크는 영화배우가 되기 이전에 형편없는 떠돌이 삼류복서였다. 마이클 세레신 감독 데뷔작 [홈보이](1988)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 영화의 크레딧에 시나리오작가로 표기된 에디 쿡은 미키 루크의 필명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 개봉당시 이 영화는 최악의 혹평을 받았다. 캐릭터며 드라마며 연출이 모두 수준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알코올중독에다가 펀치드렁크 증세까지 앓고 있는 삼류복서 조니(미키루크)의 희망 없는 눈동자가 못내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전편에 깔리던 에릭 클랩튼의 애끓는 블루스 기타 선율도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영화 속의 조니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다. 꿈과 희망은커녕 실력조차 없다. 그저 담배연기와 술주정이 난무하는 사설 링 위에 올라 흠씬 얻어맞다가 다운 된 다음 파이트머니 몇 푼을 손에 쥐면 곧장 술집으로 달려가는 그런 녀석이다. 놀이동산에서 메리 고 라운드를 운영하는 루비(데보라 포이어)와의 사랑도 덤덤하기 짝이 없다.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의 조니는 사랑고백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그녀의 손이나 어루만질 뿐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며 문득 울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미키루크는 할리우드에서도 ‘말 안듣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홈보이]이후 아예 프로권투선수로 데뷔했다. 맨날 퉁퉁 부은 얼굴로 촬영현장에 나오니 그의 매니저나 영화사 쪽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전적도 형편없다. 모두 10경기 정도를 치렀는데 그 대부분이 초반 케이오패다. 하지만 그는 후회 없다는 듯 비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힘겹게 웃으며 링을 내려오곤 했다. 수백억 연봉의 헐리우드스타가 무명의 권투시절을 그리워 한 것이다. 미키 루크는 멋진 남자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