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04 01:28:09 IP ADRESS: *.110.11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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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과 삶의 진실
로버트 로센의 [허슬러](1961)

당구가 스포츠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레저를 즐기는 아주 멋진 방법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잘 손질된  직사각형의 녹색 테이블 위로 물리학의 법칙들을 온몸으로 구현하며 또르르 굴러가는 당구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삼매경에 빠져들게 된다. 이 우아한  ‘신사의 게임’은 변신의 폭 또한 넓다. 때로는 피를 말리는 도박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의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당구장에서 아침을 맞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로버트 로센 감독의 [허슬러](1961)다. 눈썰미와 손놀림이 너무도 빨라서 ‘패스트 에디’라 불리는 에디(폴 뉴먼)와 중후한 정장차림의 배불뚝이 신사 미네소타 팻(재키 글리슨)의 밤샘대결을 기억하는가? 영화 속에서 무려 20분 가까이 진행되는 이 게임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전설적인 시퀀스가 ‘내기당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슬러]는 당구영화인 동시에 도박영화다. 이 영화는 모든 경기와 도박이 단순히 재능만으로 판가름 나지는 않는다는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다. 재능이란 승리를 위한 여러 조건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진정한 도박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약점을 한눈에 꿰뚫고 집중 공략하는 잔혹함, 삶과 도박의 무의미함을 압도할 만한 승부근성, 그리고 무시무시한 자기절제. 영화에서는 도박사에게 필요한 이 모든 자질들을 ‘캐릭터’라는 한마디로 압축한다.

[허슬러]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을 다스릴 줄 모르는 에디가 이 캐릭터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삶의 무서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허슬러]가 단순히 묘기당구나 보여주는 영화였더라면 발표 당시 아카데미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전 매스컴의 기립박수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 언제나 ‘나의 베스트5’에 꼽는 작품이다. 지옥을 통과해 온 에디가 다시 큐대를 집어 들고 당구장으로 돌아와 저주하듯 씹어뱉던 서늘한 대사들은 오래오록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질 것 같애? 12번구. 네가 그랬지? 재능만으론 충분하지 않고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4번구. 내겐 이제 확실한 캐릭터가 있어. 난 그걸 루이빌의 한 호텔에서 주웠지.”

[한겨레] 2003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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