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들의 내면일기
이동승의 [열화전차](1996)
한낮의 여의도가 인라이너들의 차지라면 한밤의 여의도는 폭주족들의 차지다. ‘쇼바’를 잔뜩 올리고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장식한 채 삐요삐요 요란한 경보음을 울려대며 새벽거리를 질주하는 그들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아리다. 하지만 교통질서 파괴니 소음공해 유발이니 하는 따위의 ‘입 바른’ 소리들이 그들의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들은 너무 젊은 것이다.
오토바이 폭주가 너무 위험하다는 말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이다. 그들이 오토바이 폭주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을 내닫는 모든 자들이 그러하듯 그들 역시 그 극한의 초긴장 상태 속에서 경이로운 해방감과 충족감을 맛본다. 그들의 몸짓에서 과잉된 자의식과 무모함 그리고 불안함을 읽어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징표들이야 말로 모든 청춘들의 공통된 통과의례가 아니었던가.
영화 [비트]를 만들 때 폭주족들을 집중 취재한 적이 있다. 오토바이 레이싱이 나오는 영화들 역시 샅샅이 뒤져보았는데 당시의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열화전차](1996년)다. 감독인 이동승 자신이 레이서 출신이어서인지 탄탄한 현장성과 굵직한 사실감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열화전차]는 레이서들이 집착하는 승부의 세계 그 자체에만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청춘의 통과의례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바람을 가르는 사나이’ 아조(유덕화)가 온갖 공포와 장벽을 극복하고 최후의 레이스를 벌이다가 문득 오토바이의 엔진을 끌 때, 그 적막한 여운의 낯선 감동이 가슴 속에 짙은 잔상을 남긴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조의 동생뻘 되는 가락이 도심의 고가도로 위에서 한밤의 레이스 도중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이다. 그의 부음을 가족에게 전할 때 아조는 운다. 절망과 회한과 자책감의 눈물이다. 그가 어찌나 처연하게 우는지 영화를 보고 있던 나의 눈시울마저 붉게 물들었다.
나는 폭주족들이 차라리 경찰에게 잡힐지언정 길 위에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이 이 괴로운 청춘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오토바이에서 내려서게 되기를!
[한겨레] 2003년 6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