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4쿼터 사랑
지나 프린스-아이더우드의 [러브 앤 바스켓볼](2000)
1981년 농구스타를 아버지로 둔 흑인소년 퀸시(오마 엡스)의 옆집에 당돌한 꼬마가 이사 온다. 농구경기에 끼워주자 모자를 벗었는데 놀랍게도 흑인소녀였던 것이다. 퀸시가 어이없어하자 모니카(사라 라단)는 당당하게 항변한다. "난 엔비에이 최초의 여자프로농구선수가 될 거야!" 티격태격하던 둘은 곧 어설픈 사랑놀이에 빠져든다. 감미로운 첫사랑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또다시 앳된 난투극이 시작된다. 그들은 겨우 11살이었던 것이다.
지나 프린스-아이더우드의 영화 [러브 앤 바스켓볼](2000)의 제1쿼터는 그렇게 시작된다. 선댄스 영화재단에서 지원하고 스파이크 리가 제작한 이 영화는 농구경기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 모두 4쿼터로 이루어져 있다. 제2쿼터는 그들의 고교졸업반 시절을 다룬 88년이고, 제 3쿼터는 캘리포니아 대학농구팀 시절을 다룬 89년이며, 제 4쿼터는 성인이 된 그들을 다룬 93년이다. 그 12년의 세월동안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전개되는 러브스토리의 중심에는 언제나 농구가 있다. [러브 앤 바스켓볼]은 자신의 모든 것을 농구에 건 젊은이들의 성장일기이며, 긴 세월의 우회로를 걸어야 했던 사랑이야기다.
성인이 된 퀸시와 모니카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농구와 멀어진다. 기어코 미국프로농구로 진출한 퀸시는 인대부상으로 코트를 떠나야 했고, 스페인 프로리그로 진출한 모니카 역시 향수병에 시달려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퀸시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면서, 모니카는 퀸시가 더는 자신의 경기를 보러오지 않게 되면서, 농구에 대한 집착역시 식어가게 된 것이다. 3쿼터에서 퀸시의 아버지는 그들의 운명을 예언하듯 탄식한다. “농구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란다.” 그럼에도 농구의 매력을 백분 보여준다는 것이 [러브 앤 바스켓볼]의 역설이다.
영화에서 가장 멋진 농구경기는 4쿼터 말미에 나온다. 다른 여인과의 결혼을 2주 앞둔 퀸시를 한밤중에 불러낸 모니카가 1대1로 맞붙자고 덤빈다. “내가 이기면 파혼해. 네가 이기면 결혼선물을 사줄게.” 사랑의 고통으로 얼룩진 그들만의 농구게임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렇다. 멋진 덩크슛을 연발하면서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한겨레] 2003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