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베리 스콜닉의 [그들만의 월드컵](2002)
엊그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다녀왔다. 축구에는 분명히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다. 평소 스포츠라면 심드렁해하던 아내도 경기 내내 새된 목소리를 질러댔고,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딸은 우리가 내리 두 골을 내어주자 기어코 눈물까지 글썽였다. 나는 우루과이가 훌륭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영리한 체력안배와 효율적인 공격방식에 있어서 그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내게 있어서 우루과이와 축구를 연결시켜 주는 인물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다. 우루과이 출신으로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평론가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는 그의 축구에세이[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는 인상적인 통찰들이 넘쳐난다. “일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축구를 단지 지배계급이 뿌리는 아편 정도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중 실상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그들만의 월드컵]은 이런 갈레아노적 축구인식의 유쾌한 표현이다. 이 영화는 피지배계급 혹은 억압된 민중에게 축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때 영국 축구대표팀 주장으로서 A매치에 73회나 출전했던 대니(비니 존스)가 교도소에 들어오자 재소자들이 보여준 반응은 적의에 가득 찬 것이었다. “왜 모두 나를 미워하지?” 대니가 묻자 고참 재소자가 대답한다. “우리는 본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어. 하지만 너는 우리가 평생 꿈꿔왔었던 모든 것을 다 가졌었지. 그런데 그걸 하루아침에 내팽개쳐 버리다니!”
그렇다. 그들에게 있어 축구란 소외이며 아편인 동시에 희망이며 자부심이다. 그래서 재소자팀이 온갖 비열한 불이익 조치와 방해공작들을 뛰어넘어 교도관팀을 물리쳤을 때 그 승리는 곧 삶의 역전이며 해방의 완성이 된다. 주연을 맡은 비니 존스는 원래 잉글랜드 프로리그를 주름잡던 스타급 축구선수 출신이어서 그 연기가 더없이 사실적이다. 제작을 맡은 가이 리치의 영향 때문인지 빠른 편집과 경쾌한 음악도 돋보인다. 그나저나 내일 있을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우리도 승리를 맛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겨레] 2003년 6월 10일
폭압과 독재의 관심을 은근히 내돌리게 하는...저도 그 당시 청룡의 팬이었습니다. ㅋㅋ
하지만, 스포츠를 보다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