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심산 등록일: 2006-07-10 15:59:13 IP ADRESS: *.147.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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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에 묻힌 영원한 청춘
프레드 진네만의 [그 여름의 닷새 동안](1982)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알프스 산록에 기대어 있는 대다수의 유럽 제국들은 코앞으로 닥쳐온 대 재앙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 인간의 무자비한 환경파괴에 대한 대자연의 응답이다. 그러나 녹아내리는 알프스는 전혀 뜻밖의 ‘선물’도 준다. 수십 년 동안 빙하 속에 냉동되어 있던 산악인들의 주검을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올여름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이 지역 경찰들이 공식발표한 주검 발굴의 사례만도 부지기수다.

알프스에서 ‘실종’된 것으로 처리된 산악인의 대부분은 죽었다고 봐야한다. 다만 주검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망’이라 언표하지 않는 것뿐이다. 반면 함께 있던 동료들이 죽음을 확인한 다음, 노천에 방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건하게 크레바스에 밀어 넣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빙하 속에 묻힌 산악인들은 본의 아니게 냉동 미라가 된다. 세월이 그들을 비껴가  ‘영원한 청춘’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알프스가 그들을 빙하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만약 유족들이 그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에 휩싸이게 될까?

프레드 진네먼의 영화 [그 여름의 닷새 동안](1982, 원제 Five Days  One Summer)은 ‘존재론적 슬픔’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 영화 속에서 50년 전에 죽은 약혼자와 얼굴을 맞댄 70대 노파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빙하 속에 고이 냉동된 남자는 여전히 20대의 해맑은 청년이다. 그를 바라보며 노파는 말을 잊는다. 반가움은 원망과 교차하고, 그리움은 회한과 뒤섞이며, 세월은 결코 넘지 못할 장벽이 된다. 이 ‘세월이 갈라놓은 연인들’을 바라보며 문득 삶의 유한함과 사랑의 무상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더글러스(숀 코너리)와  케이티(벳시 브랜틀리)만이 아닐 것이다.

[그 여름의 닷새 동안]은 1930년대 알프스 등반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중년의 산악인 겸 의사 더글러스와 그의 젊은 연인 케이티의 짧은 여름휴가를 다루고 있다. 현지에서 촬영된 알프스 등반의 장쾌한 모습과 숀 코너리의 섬세한 내면연기가 일품이다. 이 영화의 절묘한 엔딩은 유명하다. 추락사고로 끝을 맺지만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주검도 지금 쯤 빙하 밖으로 나와 있을라나? 알프스에 가고 싶다. 영화는 아쉽게도 국내 미 출시작이다.

[한겨레] 2003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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