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예술가들의 공포와 희열
베르너 헤어조그의 [최후의 등정 쎄로토레](1991)
지난 주 탈레이사가르(6904m) 원정대가 발대식을 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인도 히말라야의 이 산은 한국 산악계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93년 한국 최초로 이곳에 도전했던 대구 합동대 이후 탈레이사가르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악마의 붉은 성벽’답게 숱한 좌절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곳이다. 1998년 도전했던 제7차 원정 때는 신상만 최승철 김형진 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출간된 손재식의 [하늘로 오르는 길]은 이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담담히 묘사하여 많은 산악인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탈레이사가르 한국 초등의 영광은 2000년 울산대 산악부 원정대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7차 원정대가 공략했던 북벽을 에돌아 북서릉으로 올랐다. 지난 주 출사표를 던진 제 10차 원정대는 그러나 다시 북벽으로 올라붙는다. 미망인과 친형 등 7차원정대의 유족들과 동료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 원정대의 집념어린 도전은 21세기 한국 알피니즘의 한 기념비가 될 것이다.
그들은 왜 에베레스트나 K2처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8천m급 산들을 제쳐두고 6천m급에 불과한 무명의 험봉에 오르려하는 것일까. 한국 산악계의 대부 김영도 선생이 늘상 강조하듯 알피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다. 굳이 남들이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개척하여 오르는 것이야말로 산악인이 가슴에 달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라는 뜻이다.
베르너 헤어조그 감독의 [최후의 등정 쎄로토레](1991)는 이 낯선 예술가들이 느끼는 공포와 희열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본격 산악영화다. 쎄로 토레(3218m)는 남미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 산군에 속해있는 산이다. 고도는 비록 낮지만 탈레이사가르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등반대상지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가 원안을 쓰고, 슈테판 글로바츠가 주연을 맡았으며, 베르너 헤어조그가 연출했으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사족이 될 터이다. 장쾌한 풍광과 예측불허의 결말이 가슴을 친다. 제 10차 한국 탈레이사가르원정대의 성공과 무사귀한을 기원한다.
[한겨레] 2003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