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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0나를 움직인 이 한권의 책 - 무라카미 류 장편소설 <69>
내가 고삐릿적 이야기니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정말 악질적인 선생들이 많았다. 이제 와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종자들.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애들 패는 재미로 사는 인간들. 완장 하나 채워주면 그것도 권력이라고 눈에 불을 켜고 게거품을 뿜어대며 터무니없이 발광하는 작자들. 상상이 안 간다고? 영화 [친구]에서 “니 아부지 뭐 하시노?”하며 무식하게 학생들을 두들켜 패던 담임선생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교련선생이었다. 언제나 빨간 해병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개병대’라고 불렀다. 개병대는 우리를 그야말로 개 패듯 팼다. 하지만 억압에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제 더는 매를 못 맞겠다 싶었을 때, 우리는 아예 이 놈의 학교 때려치울 결심을 하고, 그를 학교 밖 뒷골목으로 불러내 집단으로 짓밟아버렸다. 그날 부러진 개병대의 이빨이 세 개였는지 네 개였는지.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단지 그 저승사자 같던 개병대를 죽도록 패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앞 뒤 가릴 줄 모르고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속시원하게 짤리겠군, 하며 찾아간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교련선생은 병가를 냈다고 했다. 일주일쯤 후에 그가 돌아왔는데 그래도 역시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개병대는 우리를 보자 비굴하게 눈을 내리깔며 허둥지둥 발걸음만 재촉했을 뿐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이럴 수가! 우리가 꿈을 꿨나? 아니다. 권력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훨씬 더 영악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용서해줬느냐고? 천만에!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개병대 같은 놈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는 이들과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읽은 가장 유쾌한 소설 [69]의 후기에 이렇게 썼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패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