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어제 못 들어간 HARRODS로 떠났습니다. 흠, 역시 유럽 제일의 명품 백화점이라는 명성 답게 근사하더군요. 하지만 뭐 대부분의 물건들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눈요깃거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잔뜩 기대를 했던 OUTDOOR 전시관은 아주 후졌고, TRAVEL 전시관에도 별 볼 일 없는 가방들이나 늘어놓았을 뿐. 그래도 HARRODS에 온 기념으로 저는 고풍스러운 WINE CARRIER를, 딸은 귀여운 KIPLING 제 샛노란 륙색을 하나씩 샀습니다. 그리고는 지하 음식관의 일식점에서 맛있는 스시와 미소스프로 점심을 해결.
전시회는 안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지만 끝내 피할 수 없었던 전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PIXAR의 20주년 기념전이죠. 무엇보다도 딸의 성화를 외면할 수 없었거든요. 전시가 열렸던 과학박물관은 유명한 박물관 거리의 한 귀퉁이에 있었습니다. 런던에 가장 흔해빠진 건물이 GALLERY 아니면 MUSEUM 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정말 할 일이 없어요. 그냥 빌빌 돌아다니면서 전시회 보는 게 큰 낙이에요. 박물관 거리에서도 온갖 멋진 전시회들이 줄을 섰지만 우리는 모두 다 묵살(!)하고 오로지 PIXAR를 향하여 전진...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부실한 느낌(!)입니다. 단 하나, PIXAR의 창립자인 존 레스터의 애니메이션 파노라마만은 대단히 감동적.
[img2]제가 개인적으로 런던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BMC입니다. BMC는 BRITISH MOUNTAINEERING COUNCIL의 약칭인데, 한때 PETER BOARDMAN이 근무하기도 했던 곳이죠. 딸에게 내가 이만큼 봉사를 했으니 너도 나 한번만 봐주라...그러면서 BMC를 찾기 시작했는데...맙소사, 그 본사는 맨체스터에 있다네요?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맨체스터로 가서 맨유와 토튼햄의 축구경기도 보고 BMC도 가고 그러는 건데...^^...딸의 부탁으로 다시 한번 WEST END로 진출! 어제 보았던 만화책 [SCHOOL IS HELL]과 EMILY라는 소녀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뱃지세트를 사고나니까 이제 더 이상 런던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니까...좋네요. 저는 정말 호텔이 싫어요. 오래전에 무슨 글을 쓰느라 서울의 조선호텔에 두 달간 갇혀있던 적이 있었는데, 비록 끼니때마다 그곳의 최고급 식당을 맘껏 이용할 수 있었지만, 정말 질려버렸어요. 호텔보다는 콘도가 좋고, 콘도보다는 마당이 딸린 집이 훠얼씬 더 좋지요. 집에 와서 세탁기를 한판 돌리고, 밥을 지어먹고, 이렇게 런던일기를 쓰고 있으니까 참 편안하네요...내심 뿌듯한 것은, 딸에게 물어보니, 그애가 답하기를, 정말 즐거운 런던여행이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됐지요, 뭐...이제 남은 것은 다시 빈둥거리면서 휴가를 보내는 것뿐이네요.
2006년 4월 17일
길을 걸어도 앉아있는 지금도 이미 런던에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