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그것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하지 못할 일들이 있다. 견적을 뽑아보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장사들, 제 정신이었더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들. 이런 경우들의 첫손에 꼽혀야 할 일은 물론 결혼이다(올봄에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게 좋겠다). 결혼이 뭔가? 무려 30억명에 이르는 연애가능 대상자들을 다 제쳐놓고 굳이 꼭 한 사람하고만 남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이다. 이게 도대체 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눈에 태산 같은 콩깍지가 씌워지고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혼을 한다. 왜? 간단하다. 그 순간에는 제 정신이 아니니까. 결혼생활이 가져다줄 행복과 불행의 대차대조표? 아서라, 말아라. 그런 거 뽑아보려다가는 없던 홧병마저 생겨난다. 외국의 경우처럼 한 남녀의 결합이 곧 결혼이라면 또 모른다. 우리나라에서의 결혼이란 결코 한 남녀의 결합이 아니다. 그것은 남자쪽 집안 전체와 여자쪽 집안 전체의 집단난투극이다. 예단이 어쩌구 혼수가 저쩌구 피로연 비용은 누가 부담하고…결혼식 자체의 스트레스가 사람을 돌게 만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혼을 한다. 왜? 간단하다. 미쳤으니까.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는 장사로는 뭐니뭐니해도 아이 낳기를 꼽아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끝장(!)이다. 아이가 예쁜 것은 하루 중에 3분뿐이다. 나머지 23시간 57분 동안 아이는 하염없이 울어대고 칭얼대고 사고를 치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책을 읽거나 테레비를 보는 건 관두고 밤에 제대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 작은 존재가 웬 돈은 그리도 엄청나게 잡아먹는지! 분유값과 기저귀값을 버느라고 뼛골이 녹아난다.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를 맡아줄 보모에게 월급을 몽땅 다 갖다바치면서도 행여 짤리지나 않을까 온갖 아양을 다 떨어대야 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생의 대재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이를 낳는다. 왜?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결혼과 출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들은 그 속사정을 알면 알수록 해낼 엄두가 안나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결혼? 물론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행복하다. 아이? 물론 경제적인 부담도 클 뿐 아니라 신경 써야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생각한다. 아이의 존재야말로 삶의 축복이라고. 내가 무작정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내 삶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를 되짚어보면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올 지경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바로 놀러 가기다.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튕겨져 나와 어딘가로 놀러 가기. 결혼이나 출산은 제 정신으론 못해치운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저질러야 하는 일이다. 놀러 가기 역시 그렇다. 곰곰히 따져보라. 그럼 놀러 가지 못할 이유가 백만가지쯤 나온다. 직장 상사의 눈치도 봐야하고 카드값 메울려면 돈도 아껴써야 하며 친구 아들놈의 백일잔치에도 가야한다. 온세상이 전쟁 때문에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데 혼자 놀러간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라. 주변의 모든 조건들이 놀러가기에 딱 좋게만 형성되어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결혼은 언제나 무리(無理)다.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다. 놀러가는 것 역시 이 부류에 해당한다. 놀러간다는 것은 언제나 무리일 수 밖에 없다. 이것 저것 다 따져보면 결코 하지못할 짓들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작정 놀러가야 한다! 놀러가지 못할 이유들는 백만가지다. 반면 놀러가야될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 단 하나의 이유가 한량에게는 최고의 지상명제가 된다. 그게 뭐냐고? "우리는 놀기 위해서 산다!" 그래서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쯤, 나는 발등에 떨어진 온갖 일들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도망쳐서, 인도 히말라야의 만년설 위를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월간 [VnVn] 2003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