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재발견
심산(심산스쿨 대표)
내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 학교의 전공과목은 시나리오 작법이다. 하지만 단지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학교를 설립한 것은 아니다. 또한 단순히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만으로 그 기능을 제한했다면 굳이 ‘스쿨’이라는 영어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작은 공간을 통해 ‘가르치고 배우고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스쿨의 본래 뜻 그대로 ‘학교’이자 ‘학파’인 어떤 모임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록밴드를 운영하며 산에 오른다. 전공과목인 시나리오 집필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음은 물론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곳에 새로운 강좌를 개설할 때 내가 들이대는 잣대는 단순 무식하다. 내가 듣고 싶은 강좌인가? 그것이 전부다. 내가 배우고 싶은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즐겁고도 효율적인 학습방법이다. 덕분에 나는 내가 더 깊이 알고 싶었던 와인의 세계를 사람들과 함께 탐색해나가며 즐거워하고 있다. 재야 인문학자 조중걸의 예술사를 개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어디서 왜 누구에 의하여 생산되고 향유되는가? 얼핏 들으면 우문에 가까울 만큼 아둔한 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나는 언제나 그런 것들이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제 조중걸과 함께 예술사의 깊은 심연 속으로 들어가면서 문득 잊고 있었던 내 영혼의 양식들을 재발견한다.
조중걸 예술사의 특징은 철학 혹은 과학의 입장에서 문학과 미술과 음악을 동시에 조망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매시간 수업 때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고전들과 직접 대면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원문 강독하며 나는 전율했다. 구석기 시대의 환각주의적 동굴벽화와 신석기 시대의 추상화에 가까운 회화들을 비교해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바흐의 <농민 칸타타>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나는 영혼이 고양됨을 느낀다.
우리는, 조중걸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확신들이 파괴되고 절망들로 가득 차 있는 ‘새로운 신석기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황량한 시대에 무엇으로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살찌울 것인가? 답변은 예기치 못했던 곳에 숨어 우리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고전이다. 클래식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신뢰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올 한해는 예술사 탐구와 함께 내 영혼이 부쩍 성숙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좋은 생각] 2007년 2월호
<마운틴 오딧세이>단숨에 읽었습니다.
소개된 책들을 찾아 읽는 대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