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삶인들 고달프지 않으랴
[쎄븐]의 나이트클럽 지배인
주연은 커녕 조연도 아니면서 단 한 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주목받지는 않았으나 언제나 그곳에 있어왔던 어떤 비우호적인 진실이 반짝 빛을 발하는 순간 혹은 주변인의 도발적 절규가 극장 안 모든 관객들의 숨을 일시에 멎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리는 갑자기 스토리의 본류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예기치 못한 전율에 몸을 떤다. 도도한 서사의 강을 따라 흘러가다 물 밑에 숨어있던 촌철살인의 바위에 아프게 부딪히는 꼴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데뷔작 [쎄븐]에 나오는 나이트클럽 지배인이 그런 놈이다.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연쇄살인자 존 도우(케빈 스페이시)가 ‘욕정’에 대한 단죄로 택한 살인방법은 너무 잔혹하다. 날카로운 칼을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만들어 나이트클럽 여급의 음부를 꿰뚫어버린 것이다. 이 엽기적 살인현장에 들이닥친 형사 밀즈(브래드 피트)와 서머셋(모건 프리먼)은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룸 안으로 밀쳐넣고 취조한다. “살인자가 들어오는 걸 봤지?” 삶에 찌든 얼굴에 사악한 빛을 번뜩이는 지배인은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못봤소.” “이상한 가방을 갖고 들어왔는데도 못봤단 말이야?” “여보슈, 여기 출입하는 인간들 중에 변태가 어디 한 둘인줄 아슈?” 비명소리도 못 들었냐는 밀즈의 목소리는 아예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지배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밀즈는 너무 태연자약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배인의 모습에 배알이 뒤틀려 경멸적으로 쏘아붙인다. “너는 이런 더러운 직장에서 일하는 게 즐거운 모양이지?” 지배인의 한 칼이 나오는 것은 이 때다. 카메라도 이 순간만은 이례적으로 개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지배인의 그 썰렁한 얼굴을 화면 가득 잡아준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쓰윽 내밀며 저주하듯 씹어뱉는다. “아니야, 나도 이 직업이 싫어.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되는 게 인생이야, 안 그래?”
밀즈에게는 더 이상 물을 말이 없다. 나를 포함한 관객들 역시 할 말을 잊는다. 그렇다, 누군들 저 좋을 대로만 살고 있겠는가. 어떻게 살아도 고단하고 외로운 것이 인생이다. 아마도 저 나이트클럽 지배인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짓을 때려치워야지 하며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인생인데 왠 형사놈들이 들이닥쳐 마치 용의자라도 된다는 듯 몰아붙이니 목울대가 불끈하도록 성질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싫어도 해야되는 게 인생이야.” 나는 그렇게 씹어뱉던 지배인의 분노한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허름한 대사 속에 삶의 비루한 본질이 아프게 각인되던 순간이었다.
[동아일보] 2001년 1월 12일자
싫어도 해야 한다는 강박, 실수하면 안되고 남들보다 훨씬 뛰어 나야 여유 있는 웃음으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강박 속에서.. 기필코 내가 좋은걸 하겠다는 그 희망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때가 바로 엊그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