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급의 여자를 사랑한 남자
[아모레 미오]의 패트릭
낭만주의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나는 꿈을 믿지 않는다. 멜로 영화라고 하면 지레 닭살부터 돋아나는 것도 로맨틱한 것과는 애시당초 궁합이 맞지 않도록 생겨먹은 까닭이리라.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사랑영화가 몇 편은 있다. [아모레 미오]는 부평공단을 배회하던 시절 어느 지저분한 동시상영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처음에는 무슨 유럽산 세미포르노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멍청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이 영화에 압도됐다. 그것은 계급간의 전쟁 같은 사랑을 다룬 희한한 멜로였다.
패트릭(스테판 페라라)은 파렴치한 무뢰한이며 뒷골목 깡패다. 깡패라고 해봤자 건달은 아니고 그저 양아치 수준. 그는 동네 극장에 진상을 받으러 갔다가 며칠 후면 그곳에서 연극을 공연할 반반한 여자 연극배우를 만나 즉석에서 강간한다. 그녀가 캐서린(캐서린 윌크닝)이다. 상당한 학식과 교양을 갖춘 부르조아 지식인 캐서린에게 그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는 평생 처음 만난 ‘다른 계급의 남자’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어 스스로 패트릭을 찾아 나선다. 페미니스트들은 이쯤에서 벌써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겠지만 영화는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을 간다. 호텔로 찾아온 캐서린에게 패트릭은 모욕적인 장난을 친다. “나랑 또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그럼 거기서 옷을 벗고 내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읊어봐.” 캐서린은 호텔 복도에서 옷을 벗은 다음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즉석에서 감미로운 사랑의 소네트를 지어 읊는다. 그러나 그 수모를 이겨내고 들어간 호텔 방에서 그녀를 맞는 것은 뜻밖에도 흑인남자다. 패트릭은 난잡한 바이섹슈얼이었던 것이다.
사랑 혹은 연애의 저류에는 권력관계가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그 연애권력의 무게중심을 캐서린에게로 옮겨놓는다. 막 나가던 거리의 양아치 패트릭이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패트릭을 갈구했던 캐서린의 마음은 이미 식어 버린지 오래다.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은 바이지만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이 난잡한 양아치는 한때 품었던 호기심의 대상이자 그녀의 우아한 삶에서 잠깐 샛길로 빠져나온 외도의 산책길일 따름이지 진지한 사랑의 대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 사이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열등감과 좌절감에 휩싸인 패트릭은 그녀의 서가를 가득 메운 그 잘난 책들을 마구 집어던지며 패닉상태에 빠진다. “이 따위 책들이 다 뭐야? 당장 나랑 섹스해! 네가 하고 싶을 때는 언제나 내 품을 파고들었잖아! 나는 왜 그러면 안 돼?!”
사랑이라는 이름의 전쟁에서는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상처받고 패배한다. 간단하게 패트릭을 정리한 캐서린은 다시 자신의 계급이 속해 있는 사회로 복귀한다. 그러나 평생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든 패트릭에게는 본래 있던 곳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하다. 복귀는커녕 자아마저 상실해버린 패트릭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동반자살이다. 하지만 영화의 라스트, 찌그러진 차체에서 기어 나온 사람은 캐서린이다. 패트릭은 죽고 캐서린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패트릭이라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힘든 실존적 질문들을 던진다. 서로 다른 계급간의 사랑도 가능한가? 이 전쟁 같은 사랑의 승자는 누구인가? 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운 꿈인가?
[동아일보] 2001년 6월 1일
왜 사랑은 항상 역전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