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나
[엔젤하트]의 해리 엔젤
나는 공포영화가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서우니까. 저건 영화야, 잊어버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소용없다. 무의식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등줄기를 써늘하게 만들면서 꿈자리를 사납게 만드는 것이 공포영화다. 처음부터 그 내용을 알았더라면 결코 보지 않았을 영화가 [엔젤 하트]다. 미키 루크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온다고? 게다가 알란 파커가 연출하고 마이클 세레신이 카메라를 잡았어? 이건 무조건 봐야되는 영화로군! 그렇게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게다가 웬놈의 영화를 그렇게 잘 만들었는지 도저히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옴짝달싹도 못하고 영화를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밀려오는 것은 거대한 공포였다. 어떤 한 장면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영화의 컨셉 자체가 절망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뉴욕의 사립탐정 해리 엔젤(미키 루크)은 신비에 싸인 의뢰인 루이스 사이퍼(로버트 드 니로)에게서 자니 리블링이라는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해리가 자니와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닐 때마다 잔혹한 살인들이 잇따르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해리는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가 찾던 실종자 자니는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는 악마의 왕인 루시퍼(루이스 사이퍼)에게 영혼을 팔고, 그 계약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엔젤이라는 이름을 가진 뒤 휴가 나온 병사의 심장(엔젤 하트)을 파먹고,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어 기억상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였다. 내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고, 내가 나를 찾아다녔으며, 내가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이들을 죽였던 것이다.
해리는 사악한 눈빛으로 동행을 재촉하는 루시퍼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깊이 깨닫는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고!” 해리 엔젤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공포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 개차반으로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다음날, 타인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해보는 나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대고, 헤어진 옛 사랑한테 전화를 걸어 엉엉 울고, 음주측정을 요구하는 경찰관의 아구통을 돌려버렸다니! 그런데 필름이 끊어진 그 잠깐 사이가 아니라 내 삶 전체가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공포. 그 공포는 한 인간의 자아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훨씬 넘어선다. 차라리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려 그런 회의와 공포 따위는 깨끗이 잊은 채 살아가고 싶다.
[동아일보] 2001년 10월 16일
비됴가게 알바할 때 손님한테 이거 추천 했다가 진담으로 욕 받고 할인쿠폰 줘버린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