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사랑의 이중주
워렌 비티 [레즈](1981)
나는 본래 워렌 비티처럼 뺀질뺀질하게 생겨먹은 미남배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어온 그의 문란한 여성편력에 대해서도 혐오(사실은 질투)를 품고 있다. 하지만 워렌 비티에 대한 이 모든 반감들은 [레즈](Reds, 1981)를 보는 순간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이토록 멋진 영화의 시나리오·감독·제작·주연을 혼자서 다 해치우다니! 설령 그가 악마의 자식이라 해도 기꺼이 용서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중국혁명에 대한 가장 생생한 보고서가 에드거 스노의 [북경의 붉은 별]이라면, 러시아혁명에 대한 그것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간]이다. [레즈]는 바로 이 실존인물 존 리드(워렌 비티)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던 루이스 브라이언트(다이앤 키튼)와의 사랑이야기다. 공산주의의 열혈전도사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다. 존을 보고 첫 눈에 반한 루이스는 곧 가정을 내팽개치고 그와의 동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자나깨나 혁명만을 꿈꾸는 존은 루이스에게 부담스러운 상대다. 자유분방한 루이스가 극작가 유진 오닐(잭 니컬슨)에게로 달아나자 상심한 존은 세계를 주유한다.
그들의 사랑이 다시 불타오른 것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였다. 혁명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들의 사랑 역시 절정을 맛보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과 사랑이 언제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존이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하자 소련 공산당의 고위간부가 뜨악한 얼굴로 이유를 묻는다. “루이스와 약속했거든요.” 고위 간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차는 반군의 포격을 받아 파괴된다. 기차에서 뛰어내린 존이 죽어라고 도망친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카메라는 냉정하게 그를 지나쳐간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성공했다. 존은 죽어 크레믈린 혁명묘지에 묻힌 유일한 미국인이 됐다. 죽는 순간 그가 찬양한 것은 혁명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최민은 이렇게 썼다. “이 온전치 못한 사랑을 감싸기 위해/우리는 가끔 혁명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 반대다. “이 온전치 못한 혁명을 감싸기 위해/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동아일보] 2002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