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점지해준 천생연분
진가신 [첨밀밀](1997)
약혼녀가 있는 남자라면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아서는 안된다. 누군가의 정부로 살아가면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도 배신이다. 그러나 이 지당천만한 공자님 말씀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있으니 그것이 사랑이다. 첸커신감독의 영화 [첨밀밀](甛密密, 1997)에서 여소군(리밍)은 이교(장만위)에게 끌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고, 이교는 여소군과 함께 있을 때에만 마음의 평화를 맛본다.
그들의 사랑은 처음에 우정처럼 시작되었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숙하기까지 한 여소군은 악착같고 약삭빠른 이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살이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이 상반된 두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뜻밖에도 본토인 중국의 대중가수 덩리쥔(등려군)이다. 그들은 설대목에 덩리쥔 불법테이프를 팔다가 쫄딱 망하고, 그날밤 얼떨결에 몸을 섞고, 길거리에서 덩뤼쥔을 목격한 다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심지어 10년 세월이 흐른 다음 타향만리 뉴욕의 한 귀퉁이에서 그들을 마주 서게 만드는 것도 덩리쥔의 사망소식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인연의 모든 갈피마다 사랑의 메신저처럼 덩리쥔이 존재해온 것이다.
[첨밀밀]은 인연을 다룬 영화다. 흔히 주인공과 적대자 사이의 갈등을 드라마의 핵심요소로 꼽는다. 그렇다면 [첨밀밀]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은 누구이고 적대자는 누구인가? 굳이 따지자면 ‘여소군과 이교의 인연’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적대자라고 꼽을 수밖에 없다. 후자는 참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본토에 두고 온 약혼녀, 원치 않는 결혼, 매몰차게 돌아서기에는 너무 착한 정부, 홍콩의 경제위기, 심지어 야속하기 짝이 없는 뉴욕의 교통신호등까지.
이 모든 다양한 방해요소들을 헤치고 10년이라는 세월마저 건너뛰어 기어코 서로 마주서게 된 인연이라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다. 우리는 그런 인연을 천생연분이라 부른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첨밀밀]은 품위 있는 영화다. 시종 엇박자로만 이어진 그 기나긴 세월이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첨밀밀]은 잔인한 영화다. 우정인줄 알았더니 사랑이었고 그것도 애당초 하늘이 점지해준 천생연분이었다고? 그렇다면 삶의 어느 길목에서 불현듯 그런 인연을 놓쳐버렸거나 심지어 아예 코빼기도 구경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바라 살아가라고.
[동아일보] 2002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