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택의 조난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나는 1년째 어떤 일간지에 자그마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스포츠들을 하나 하나 되짚어보는 칼럼이다. 2004년 5월 26일자 [한겨레]의 고정칼럼 <심산의 스크린레포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제목은 <희박한 공기 속으로>였다.
2004년 5월18일,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등반대장 박무택과 대원 장민은 세계의 지붕 끝에 우뚝 섰다. 대구 계명대학교 산악부 출신들이 모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고자 성취해낸 쾌거였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이들은 무전기를 통하여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탈진과 설맹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셸파들마저 포기한 상황에서 홀로 그들을 구조하러 올라간 백준호 대원마저 실종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하늘과 맞닿은 저 위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해발 8천미터에 오르면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평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 ‘희박한 공기’ 속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극한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 마련이다. 산악인들은 그래서 이 특수한 시공간을 ‘죽음의 지대’라고 부른다. 이곳은 곧잘 인간의 의지와 이성의 통제를 무력화시키곤 한다. 산악문학으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바로 이 죽음의 지대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으로 유명하다.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에서는 무려 18명이 조난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사고 당일 정상에 올랐던 산악인 겸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증언하는 그들의 최후는 책을 읽어 내려가기가 버거울 만큼 고통스럽다. 동시에 그 극한의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피어나는 뜨거운 인간애의 편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지만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던 이 책을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추구해야 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디브이디(DVD)로 출시되어 있는 로버트 마르코비치 감독의 〈인투 씬 에어〉(1997년)는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낸 영화다. 할리우드식 산악영화들 속에는 결핍되어 있는 ‘고통스럽지만 우직한 진실’이 이 작품 속에는 있다. 박대장의 조난소식을 듣고 한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불현듯 이 작품을 기억해냈다. 그리고는 홀린 듯 영화를 다시 보는 내내 소리 죽여 울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떠나가 버린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 산악인 박무택 백준호 장민! 부디 편히 눈을 감고 극락왕생하시라!
그 해의 초겨울이 닥쳐올 무렵 나는 엄홍길의 전화를 받았다. 내년 봄에 무택이 찾으러 간다! 같이 안 갈래?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를 선발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썼던 글 속의 세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기적처럼 피어나는 뜨거운 인간애의 편린들’을 수 없이 체험했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추구해야 될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으며, ‘고통스럽지만 우직한 진실’을 버겁도록 직시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 책 <엄홍길의 약속>은 그 길고 험난했던 과정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원정대의 공식보고서와는 다른 형식으로 쓰여졌다. 정확한 시간 및 고도의 기록 혹은 동원된 물량의 수치나 등반테크닉의 상세 묘사 같은 것은 이 책의 관심분야가 아니다. 나는 전문산악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 나는 산이나 등반행위 자체를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산에 오르는 ‘인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 황량한 티벳고원 위에 우뚝 솟아있는 대지의 여신 초모랑마를 배경으로 펼쳐 놓은 채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뜨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원정을 다녀온 뒤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었냐고 물어온다. 나는, 감히 대답하건대, 행복했다. 히말라야에 다녀오니 한국의 산들이 시시해 보이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솔직히 대답한다. 북한산과 설악산이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다시 가고 싶다. 히말라야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황량한 티벳고원과 시시각각 두려움을 일깨워주던 초모랑마와 그 세월을 함께 견뎌낸 가슴 뜨거운 사내들 모두를 나는 지금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5년 여름
초모랑마를 그리워하며
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