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반 34기(2014년 10월~2015년 4월) 수강후기 발췌록
“신촌원더스를 꿈꾸는 자들”
오전에 마눌과 단둘이 영화를 보았다. 고양원더스의 선수들과 김성근 감독의 3년여간의 삶의 이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영화의 실제 스토리처럼 영화를 만들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12년째 입봉을 못하던 여자 감독이 후반부에 투입되어 이끌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훌륭히 작품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와 선수들의 그것에 차이가 없다라는 측은지심이 하나로 묶게 했던거 같다. 프로에 입문도 못한 야구의 루저들과 영화판을 전전하는 12년째 무명 감독에게 야구와 영화는 결국 같은 무대였으리..
수강후기를 쓴답시고 앉아서 엄한 소리만 하고 있다. 한번 더 가보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영화의 김성근 감독을 말하기 위함 이었다. 김성근 감독이 굳이 고양원더스의 선수들을 키워내고 그들의 꿈을 가혹하게 몰고나가려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맹자의 성선설에 나오는 근거인 '불인지심(不忍之心)'- 남의 불행을 모른 척 못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심산스쿨의 심산 선생님의 마음도 아마 이런 불인지심이 아닐까 한다. 각자의 사연과 꿈을 가지고 모여든 원더스처럼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가지고 모여든 34기 멤버 25명! 이 영화판에서 '팔리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작가로서의 가이드를 해주시었으니..그 차이는 없다고 본다. 근데 34기의 그 말도 안되는 보잘것없는 시나리오와 부족한 지식을 마주대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셨을까? 아마도 '불인지심'하는 그런 마음이 없었으면, 지금의 심산34기 까지의 시나리오 사관학교로 결코 자리 할 수 없었을 것이라 본다.
히말라야 마나슬루라는 인생 전환기에 맞이한 인생 최고의 트레킹까지 심산34기를 통해 비단 수업의 내용만이 아니라, 좋은 경험과 동기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던 커다란 행운도 정말 고맙고 잊을 없을 것이다. 목요일 오후 신촌 로터리로 향하던 6개월의 시간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중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는지를, 아마도 지금은 잘 모를거 같다. 내가 성공한 시니라오 작가가 되건 평범한 일상의 아저씨가 되건 지난 34기 심산스쿨의 순간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평가 될 수 있을 지 모른다.
'심산반 수업 덕분에 이런 내가 될 수 있어지..!, 아니면 '좀 더 그 때 열심히 했으면..' 하지만 난 나의 성공과 실패에 따른 이러한 결과론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얼마만큼 내가 절박하게 나의 꿈을 위해 달려왔는가를 반성하며,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으로 절박함을 느끼게 해준 심산반 34기를 마치며, 함께 했던 모든 심산 34기 동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좋은 인연으로 소중한 공간을 같이 나눈 이들의 인생에 커다란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며, 고양원더스의 못다한 미완성 이야기가 아니라, 신촌원더스 34기의 화려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 날까지 모두 건필하자구요(조◯기).
“역시나 현실적인 철퇴를 내려주시고”
6개월 전 심산반의 전 기수 선배님들의 후기들을 보며 수강을 고민하던 제가 직접 후기를 쓰게 되는 날이 왔네요. 무작정 이야기 만드는 게 좋아서 시작했던 분야지만 사실상 無에서 시작한 것인지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물론 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이제야 시나리오라는 걸 쓰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감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배웠던 기술적인 측면은.. 정말 말 할 필요도 없이 좋았고,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선배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조언, 어느 것 하나 저에게 박히지 않았던 것이 없었습니다. 꿈을 쫓고 있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나태해진 저에게 현실적인 철퇴를 내려주시고,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시나리오로 선생님을 괴롭혀드려서 저 역시 선생님께 그에 걸맞는 괴롭힘을 당하고.. 항상 뭔가 얻어맞는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그 애정 어린 타작 덕분에 제가 한발자국이나마 앞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강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너희들이 시나리오를 잘 쓰는 꼴을 한 번 보고 싶다.” 전 사실 예전에 선생님께서 상급반을 여실 예정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바로 상급반에 들어가리라 결심하긴 했습니다만 선생님의 이 말씀이 다시 한 번 저를 확신케 해주었습니다. 상급반에서는 위플래쉬에서의 앤드류와 플랫쳐와 같은 관계로, 제가 선생님을 한 방... 아니 놀라게 해드릴 결심으로 열심히 하고, 또 선생님의 비수보다 날카로운 지적을 기대하겠습니다!(이◯환)
“영원회귀사상에 비춰서 바라본 심산스쿨”
우리의 삶이 지금과 같은 똑같은 형태로 무수히 되풀이해서 살아가는, 영원히 반복되는 니체의 '영원회귀' 관점에서 보면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삶이 아닌 내가 살아왔던 삶을 정확히 다시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 없이 정확하게 동일한 삶의 영원한 반복이라 했다.
내 삶을 정확하게 그대로 다시 산다면,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워했던 사람들을 영원히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무료하고 권태롭게 보낸 현재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끔찍한 허무라 할 수 있겠지만 다시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다시 반복되어서 행복할 만큼,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영원히 반복되는 삶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영원회귀 사상에 비춰서 바라본 심산스쿨에서의 순간들은 즐겁고 행복한 배움이었고 소중한 만남 이였다. 이 행복한 순간들은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의 순간들로 채워졌다. 100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으로 한정되는 ‘인생’ 보다, 무한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의 무한한 길이를 갖게 되는 ‘순간’에 더욱 최선을 다하며, 심산스쿨 이후의 주어질 순간들과 행복들도 놓치지 않고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더욱 열심히 삶을 새롭게 창조해 나갈 숙제를 안고 길을 다시 나섭니다(조◯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본”
항상 마음 속에만 품고 있던 시나리오 작가라는 꿈을 구체화 하고자 신청한 수업. 목요일 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강의실로 향했더랬죠. 열심히 한 번도 안 빠지고 수업에 참여했으나, 입에 풀칠하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기에 마지막 수업과 MT에 참석하지 못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네요. 얼굴 보고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가까스로 씬 수를 채워 쓴 시나리오는 저의 미비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심산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쓴다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 1년은 베껴쓰기와 분석을 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 상급반이나 박헌수 반을 들어 보려고요(안◯덕).
“대화와 액션이 부딪칠 때의 진실이란”
심산반 33기에 있던 친한 형의 추천으로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비가 내리던 날씨에 충정로에 한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형이 저를 설득해줬던 것도 개인적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매주 수업을 들으면서 빠짐없이 느꼈던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뭘 느꼈느냐면,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에요. 그래도 지금은 6개월 전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그나마 알기라도 하니까! 스스로 공부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정말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위플레시의 플레쳐처럼,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몰아부치는 것..그런 치열함만이 사람을 단련시키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뭐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대화와 액션이 부딪히면 액션이 진실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말입니다. 이제 나에게 하는 거짓말은 그만하고, 액션으로 보여주는 그런 인생을 살겠습니다(◯담).
“노력하고 있는데 성취하기가 어렵다면”
누군가로부터 심산스쿨의 교재 <시나리오 가이드>를 선물 받은 건 십여년 전 이었습니다. 때 묻은 겉과 달리 책의 속살은 그대로 하얀색. 맨 앞장에는 2003년의 제가 매직으로 적어놓은 메모가 있더군요. 그 메모가 바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시나리오를 쓰는 구체적인 목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장 한장 곱씹으며 읽고 예로 든 영화도 다시 챙겨봤습니다.
좋은 스토리의 요건 – 만약 관객이 누군가와 감정이입하고 있는데, 그 누군가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매우 어렵다면 스토리는 제대로 되어가는 것이다. 좋은 작가의 요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어렵다면 지금 제대로 해 나가고 있는 거 아닐까. 착각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믿고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비록 34기 기간 동안 납득할 만큼 좋은 초고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나만의 구체적인 이유와 구체적인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매우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 쓰는 몸을 만들도록 트레이닝 해주신 심산 선생님 (마지막 MT, 산에서 마시는 와인의 상쾌함을 알게 해 주시어 특히) 과 34기 동료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빠른 시일 내에 또 다른 초고를 가지고 다시 만나 뵙길 바랍니다. 모두들 건강 잃지 마시고 건필하세요(이◯찬).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엠티를 갔다오고 이제 목요일에 학원을 가지 않는단 사실에 공허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공허함 속에 무언가 찜찜함이 자리 잡았더랬죠. 뭐인고하니, 후기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랴부랴 글을 적고 있습니다.. ㅎㅎㅎ 후기를 쓰고있는 지금도 종강을 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당장 신촌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할 것만 같습니다.
2014년 9월부터 시작해서 2015년 4월까지 달려온 수업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한 달 동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잠을 못이룬 적이 많았습니다. 이 고민을 끝내지 못한 채 수업을 듣게 됐고 수업을 듣는 6개월 동안 확실히 마음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자였습니다.
내가 비록 밥 한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더라도 하자는 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만큼 이 수업은 제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지식과 스킬을 배운 것은 물론이고 제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준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좋았던 점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주위에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함께 할 동료가 생긴 것 같아 기쁘고 제 인생에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34기의 수업은 모두 끝났지만 많은 분들과의 인연마저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전 이 말을 하기 위해 반장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아메바를 가르치느라 고생하신 심산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수업을 함께 들었던 형님, 누나, 친구...는 없고, 동생분들 모두 감사하고 고생하셨습니다. 모두모두 파이팅하십시다!(김◯인)
“어쩌면 굉장히 빠르고 쉬울 수도”
한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일이 굉장히 오래걸리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굉장히 빠르고, 쉬울 수도 있다라는걸 체험하게 해준 수업이어서 좋았습니다. 어차피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으니 일단은 뱉어내는 방법을 알게 해준 수업...뱉어낸 후 뭉게지고, 잘 섞고, 빼고, 뒤집고 하는 방법을... 말이죠. 무튼, 다들 멋진 시나리오 쓰길 바랄게요!! 영화관에서 만나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애).
“직설적이고 거칠지만 사실적인 강의”
씬이 뭔지, 지문이 뭔지, 장르가 뭔지, 3장 구조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뚝딱 써서 시나리오를 제출하고,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나조차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다니…ㅋㅋ 제가 회사에서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다 필요 없고, 결과로 얘기합시다’ 였는데, 그런 저한테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어요.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요. 직설적이고 거칠지만, 사실적인 표현으로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수업 방식도 좋았습니다. 시나리오를 왜 쓰고 싶은지도 확실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주 긴 여정이 되겠지만, 결과로 얘기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김◯경).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들”
어느 날. 지금껏 쓰지 못한 장편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심산스쿨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심산선생님은 산과 와인을 사랑하시는 낭만적이신 분이기도 했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으론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까지는 평균 7년이 걸리고, 적어도 만씬을 채워야 하며,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말씀을 들은 후 많은 분들이 시나리오 작가란 낭만적인 단어에 혹해서 들어왔다가, 낭만은 무슨... 그냥 지옥불에 제 발로 들어간 꼴 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심산반34기 많은 분들이, 각오 단단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부족한 시나리오 하나를 꺼내놓고 나니...) '그래, 하나론 잘 모르겠으니 다음 꺼 하나 더 써보자!'하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시나리오를 쓰려는 이유에 대해선 아직 저 스스로 뭐라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거 다 떠나서 심산스쿨에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얘기를, 영화를 만들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낭만에 젖은 어린 철부지의 생각으로만 받아들이던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이런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모두 이 일에 굉장히 진지하셨고, 성실하셨거든요. 그 분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배울 게 많았습니다. 아마 그 분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강◯수).
“시나리오 쓰기가 재미있고 영화가 재미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으로 알게 된 심산스쿨, 그냥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학원을 등록을 하고서 막상 수업을 들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저한테는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시퀀스라는 용어를 비롯한 모든 걸 그때 처음 들었거든요. 그리고 6개월의 과정, 처음 써 본 장편 시나리오, 베껴쓰기, 수업을 따라가느라 무지 힘이 들었지만 저에게는 정말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을 배울수록 시나리오 쓰는 게 재밌고 영화가 재밌어졌으니까요.
이제 막 뭔가를 이해를 하려는 것 같은데 수업이 끝나서 아쉽고 사람들과 이제 좀 친해질 것 같은데 끝나니 더 아쉽고, 6개월 동안 가르치느라 고생하신 심산쌤, 폭언 폭행을 하지만 사실은 속이 깊은 좋은 분(?) 아니 그건 더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시나리오에 리뷰를 써주고 많은 조언을 해준 34기 동기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게 재밌고 적성에 맞을까? 라는 답을 얻기 위해 수업에 들었는데 재밌고 적성에 맞구나라고 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생각해보니 안 좋은 것 같군요. 안 좋다는 것도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심산 선생님 감사합니다!!!(윤◯성).
“심산반 34기 수업을 통해 얻어가는 것들”
1. 장편 시나리오를 내 손으로 완성한 데서 나오는 만족감.
집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면 동기 부여가 잘 안 돼 게을러질 때가 많았는데 데드라인과 제출해야만 한다는 부담감 덕(?)에 허리 아픈 걸 참아가며 글을 끝내 완성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2. 좋은 인연, 좋은 사람들.
영화를 나만큼이나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3.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겠다는 감.
이전까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만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과 감은 전무했다. 앞으로는 심산 선생님께서 제시해주신 이정표를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하니 이젠 더 이상 막막하지 않다(김◯민).
“가장 보편적인 것들의 특별함에 대하여”
마무리를 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간 제가 배운 것들의 핵심에 대해서 짚자면 역시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작년 9월은 솔직히 말해 저는 생업을 결심하고서 글을 공부한 이래로 가장 궁지에 몰렸던 시기였고 시나리오 수업은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선택한 강좌였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자연히 손에서도 쉽게 나올 것 같았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첫 수업 때 일 년에 사람들이 읽는 텍스트와 일 년에 보는 영화의 압도적인 차이에 대해 새삼 깨달았으면서도 무척 놀랐으며 소설이나 책이 사양세라는 말에 딱히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던 점에 다시금 놀랐습니다. 그건 강좌 중 여러 차례 언급되었던 ‘통계’ 그 자체였지요.
수업이 끝나고서 곰곰이 집에 가는 길에 내내 들었던 생각은 적어도 눈앞에서 가르치는 이 사람은 정직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건, 평생 써왔던 시나리오 집필 수에 비해 정식으로 크레딧이 된 작품이 단 네 작품에 불과하다는 책의 구절을 읽었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들어볼까란 생각과 함께 다음 주에 다시 나왔더랬죠.
수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트레이트하게 이론 하나하나를 짚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직관적이었습니다. 예제로 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과거 제작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의 대비는 제가 수업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제겐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손에 쥐어주는 능력은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화자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각별한 법입니다. 오래 전 변사들이 당대의 별이었던 것처럼. 이 스트레이트들이 앞으로 대단히 아프게 제게 꽂힐 거라는 건 수업이 거듭되며 느끼면서도 깨달게 된 건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는 평생을 대단히 특별한 것에 대해서 쓰고 싶었고 또 그걸 위해서 적잖은 실패를 반복했습니다. 너무 반복해서 그런지 완작을 단 한편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수업에서도 뭔가 대가들만의 비법이나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작법들을 기대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죠.
비법이란 없다. 그렇습니다. 수업의 결론은 훌륭한 작품이란 뻔히 알고 있는 정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터무니없는 착각은 앞으로 그 대가를 무섭게 치를 것이란 예지이기도 합니다. 수없이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왔지만, 결과적으로 작가는 어떤 작품이든 전면에 드러날 걸 피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안 맞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맞고 버틸 체력을 길러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편법을 쓰지 않고 오로지 기량 하나만 믿고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하나의 몸으로 배울 지론이었던 겁니다.
누군가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대해 말했듯이, '그는 아무것도 아닌 걸 아주 특별하게 만드'는 게 어쩌면 대가들이 하는 일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도 바로 그 지점일 겁니다. 오래 전 학교를 졸업하기 전 날에 카버의 책을 읽으며 아이작 바벨의 “그 어떤 문장도 작품을 마무리하는 방점만큼 독자의 심장을 관통할만한 힘은 없다.”라는 인용된 문구를 보고 칠판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쓰고 나왔던 기억이 요새 자주 생각났습니다.
‘너는 무엇을 읽고, 뭘 쓸 것인가.’ 이제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정직이란 힘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시나리오 강좌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절벽으로 수천마리가 질주하는 레밍쥐는 이윽고 떨어지겠지만 그 흔적은 유적이 됩니다. 작가가 배워야 할 건 길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부터 잘 정하게끔 치밀하게, 그리고 우직하게 한 곳으로 달리는 법에 다름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은 시와 소설은 명확히 죽어가고 있고 우리 작가들은 그 명예로운 퇴장을 지켜봐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엄연히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있고 많은 사람들을 고무시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이야기는 희극에서, 시에서,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또 다시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갑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각 매체의 죽음과 새로운 매체를 윤회해가며 진보해 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양상일 따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나치기 쉬운 ‘보편성’을 작가는 무시해선 안 될 겁니다. 흐름의 바깥을 지향한다고, 그 흐름 자체를 부정해선 또 안 될 것입니다.
내내 말씀하신 통계대로 앞으로 7년 정도가 작가 지망생들이 ‘보편적인 크레딧으로 걸릴 때까지의 기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여간해선 피해갈 수 없는 세례일 겁니다. 전 어떻게 될까요? 원점에서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적잖은 나이에 늦깍이로, 더욱 좁은 문이 되어가는 영화판으로. 아무쪼록 얼마간이 됐건, 가능한한 빨리 크레딧으로 인사를 올릴 수 있길 단지 그걸 바랄 뿐입니다. 정직하게 한 자 한 자 몸으로 밀고 나가겠습니다(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