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들 잘들 보내고 계십니까? 저는 연휴 내내 죽어라고 일만 했습니다. 백만년만에 책을 한권 만들었지요. 오래 전에 쓴 원고들이지만 일일이 다시 다듬고, 본문 내용과 관련이 있는 사진들을 찾고, 그 사진들마다 정확한 캡션(사진설명)을 덧붙이는 일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미친 듯이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지? 결론은 조금 웃깁니다. “놀다 지쳐서.” 그렇습니다. 심산이 놀다 놀다 지쳐서 이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내는 책은 오래 전부터 기획해왔던 ‘마운틴 오디세이’ 시리즈의 제1권입니다. 2002년에 출간했던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풀빛)는 절판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뭐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고책 시장에서 4~5만원을 호가한다더군요. 지금도 이따금씩 이 책 다시 안 찍느냐는 문의 메일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개정증보판이 곧 나온다고 답장을 보내곤 했지만, 그 동안 노는 데 미쳐서, 계속 그 출간 일정이 연기되곤 했습니다. 이제 그 ‘마운틴 오디세이’를 아예 시리즈로 냅니다. 아마도 최소한 5권 정도는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내는 책의 제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출판사와 협의를 해봐야 되겠지요. 그냥 가제 삼아 붙인 제목은 [마운틴 오디세이-세계 산악인 열전]입니다. 그 이후로는 [마운틴 오디세이-국내외 산악문학 리뷰], [마운틴 오디세이-깊은 산의 초대], [마운틴 오디세이-서울은 산이다] 등을 속속 세상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그 시리즈의 첫 책인 [마운틴 오디세이-세계 산악인 열전]은 늦어도 10월 이내에 서점에 깔릴 예정입니다.
출간 여부와는 별도로 이 책의 내용들을 천천히 심산스쿨 홈페이지에 올릴까 합니다. 그 동안 제가 홈페이지에 새 글 올리기도 게을리 했던 까닭에 “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자 읽을 게 없어”라는 식의 푸념도 심심치 않게 듣곤 했는데 이제 좀 만회를 해볼려고요(ㅎㅎ). 우선 아래에 [마운틴 오디세이-세계 산악인 열전]의 서문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이후 본문은 [심산서재>산>산악인열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산악인의 생년순으로 올리니까 일종의 등반사라고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프랑스 샤모니-몽블랑 시내의 가이드 협회 건물 앞에 선 심산. 이 건물 벽면에는 ‘몽블랑의 역사를 빛낸 20인의 산악인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데 사진 속에 보이는 5명도 그들 중의 일부이다. 사진 왼쪽부터 에드와르 퀴플랭(1840-1906), 프랑스와 드부아수(1832-1905), 조제프 라바넬(1869-1931), 미셸 파요(1840-1922), 미셸 크로(1830-1865).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산길을 걸을 때면 늘 사로잡히는 상념이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을 맨 처음 낸 사람은 누구일까? 분명 처음부터 길이 있었을 리 없다. 누군가 처음 길 없는 곳에 과감히 첫 발자국을 내디뎠을 것이다. 등반전문용어로 말하자면 개척등반이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갔다. 그래서 길이 없던 곳에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은 오히려 길을 잃었을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 나는 등산을 할 때 개념도보다는 등고선 지도에 의지하는 편이다. 지도를 보고, 산세를 읽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보면 이른바 ‘법정등산로’라는 길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뜻밖의 비경은 그런 호기로운 시도 끝에 만나는 행운이다. 이 계곡에는 내가 처음 들어왔겠지. 이 능선을 이 방향에서 치고 올라온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나 아니다. 그 인적 끊긴 곳에서도 어김없이 ‘먼저 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그곳을 지나쳐간 것이다.
안전한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곳에 모험은 없다. 어쩌면 소풍이나 산책 혹은 관광이라 지칭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오르는 곳의 높이가 품질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해도 고산 세르파가 깔아놓은 고정자일에 의지하여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 오른다면 별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라인홀트 메스너는 요즘 유행하는 ‘상업등반대’를 ‘고산여행사’라고 폄하하여 부른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산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내가 어떤 이의 삶에서 매력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가 ‘정당한 방식으로(by fair means)'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of his own style)' 자신의 삶을 꾸려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개척등반 하듯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작가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정치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짧은 소견과 편협한 시야에 비추어볼 때 그런 삶을 산 사람들이 가장 많은 부류는 역시 산악인들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의 절대 다수는 수년 전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것들이다. 연재할 당시의 큰 제목은 ‘심산의 사람과 산’이었다. 산을 통해서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통해서 산을 이야기한다는 취지였다. 연재의 순서는 현재 이 책에 배열되어 있는 순서와 다르다. 과거와 현재를 제멋대로 오갔고, 구대륙과 신대륙을 꼴리는대로 넘나들었다. 이제 그 연재물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묶으려 하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부터 하나의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도대체 하고 많은 산악인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이들을 골라냈던 것일까?
가장 쉬운 답변은 단순하다. 내가 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보자. 나는 왜 이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 책에 실려 있는 산악인들을 꿰뚫는 하나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원고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 차례에 걸쳐 읽어보면서 깨달았다. 그들은 ‘길을 만든 사람들’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용감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뚜벅 뚜벅 걸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산행이 그랬고 그들의 삶이 그랬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등반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이다
책 속의 어떤 이는 세계등반사에 굵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자들이다. 하지만 등반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산악인들의 이야기를 모두 쓰지는 않았다. 또 다른 어떤 이들의 등반경력은 몹시도 일천하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 삶의 이야기를 전기형식으로 쓰지도 않았다. 연재 지면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사 더 넓은 지면이 할애되었더라도 누군가의 전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지면의 대부분을 소비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그것을 삶으로 체화시킨 한 인물을 얼핏 소개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가벼운 에세이의 형태를 띄고 있다.
연재를 책으로 묶을 때 순서의 변화를 주었다. 생년을 기준으로 인물들을 재배치한 것이다. 그렇게 순서대로 읽어내려 가다보니 얼추 어렴풋한 등반사의 밑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물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읽는 ‘이야기 세계등반사’인 것이다. 크게 보아 알피니즘의 탄생, 알프스 초등경쟁, 히말라야 초등경쟁, 요세미테 거벽등반, 현대 자유등반의 시기로 나아간다. 각각의 시대가 두터운 책 몇 권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소략한 에세이로 소개하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위하여 새로 쓴 원고들 속의 두 주인공 에드문드 힐러리(1919-2008)와 라인홀트 메스너(1944- ). 힐러리는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했다. 메스너는 1980년 무산소 단독등정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두 사람 모두 각자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당시의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한 자리에 섰다. 1953년의 장비와 1980년의 장비를 비교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진이다.
연재 당시에는 한국 산악인들도 몇몇 소개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제외시켰다. 동시대의 한국 산악인들을 평가하기에는 나의 역부족이 너무 큰 까닭이다. 대신 바다출판사 김인호 대표의 부탁에 따라 에드문드 힐러리와 라인홀트 메스너를 새로 써서 포함시켰다. 너무 유명한 산악인들이라 일반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득에 못이기는 척 넘어간 것이다. 연재가 끝난 이후에 타계한 산악인들도 있다. 리카르도 카신과 발터 보나티다. 이들에 대해서는 사후약방문식의 짤막한 사족을 덧붙여 놓았다.
나는 현행 외국어 표기법의 일부에 대하여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그 법을 무시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표기하였다. 간단히 말하여 윔퍼를 휨퍼로, 머메리를 머머리로, 보이테크를 보이치에흐 등으로 쓰기가 싫었다는 뜻이다. 독자 제현의 혜량을 구한다.
부록으로 ‘세계등반사 100대 사건’을 덧붙였다. 로제 프리종-로슈(Roger Frison-Roche)와 실벵 주티(Sylvain Jouty)가 함께 쓴 세계적 명저 <<세계등반사(A History of Mountain Climbing)>>(Flammarion, 1996)의 부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제 프리종-로슈는 산악인 겸 탐험가이자 산악문학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등반사학 분야에서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며, 실벵 주티 역시 저명한 산악잡지 <<Alpinisme et randonnée>>의 편집장으로서 등반사에 정통한 인물이다
다만, 저자 두 사람이 모두 프랑스인이다 보니 정리 자체가 지나치게 프랑스 중심 내지 유럽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렵다. 이 때문에 번역에 임하면서 내심 불만스러웠던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나, 원저자의 뜻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역자의 도리라고 판단하여, 일단 원문에 쓰여진 표현들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다소 편파적인 기술에도 불구하고 세계등반사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인명과 봉명은 처음 등장할 때에 한하여 원문과 병기하였다.
이 책에 실린 산악인들의 삶과 등반이 꼭 산악인들에게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산을 대하는 태도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인생길은 산행길과 닮았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도전, 전혀 새로운 생각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내는 불굴의 의지, 그리고 대세와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독창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를 살았고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그들의 삶과 등반을 통하여 이렇게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길은 내가 만든다. 이 책은 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가슴 뛰는 이야기이다.
2014년 가을
신촌 노고산 자락의 심산재에서
심산
연재의 첫번째 글
과학적 근대 등반의 아버지/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1740-1799)를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가능하면 2주 마다 한번씩 올릴 생각입니다
http://www.simsanschool.com/board_mqza83/656103
드디어 나오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저에게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증보판 언제 나오냐고 물어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좋아하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