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 진영 봉화산 마애여래좌상 이칭별칭 노무현미륵 문화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규모 높이 2.45m 무릎폭 1.7m 소재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산 3-10
쓰러졌다 일어섰다 다시 쓰러진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화산의 노무현미륵
경상남도 진해시의 북서면 끝자락에 진영읍이 있습니다. 창원시와 맞닿아 있는 곳으로서 진영단감으로 유명하지요. 이 자그마한 읍에는 봉화산(烽火山, 140m)이 솟아 있습니다. 퇴임한 노무현이 지인들이 찾아오면 몸소 안내산행을 하며 ‘낮지만 높은 산’이라 자랑하던 산입니다. 봉화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봉하마을이라고 합니다. 노무현이 태어나고, 자라고, 훗날 퇴임 후 귀향하였다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마을입니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생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매우 작고 소박한 초가집입니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묘역이 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하고 지었는데 나름 정갈하고 경건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봉하마을의 뒷산인 봉화산에는 부엉이 바위가 있습니다. 노무현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곳입니다. 노무현 생가와 부엉이 바위와 노무현 묘역은 각각 서로 1Km 남짓 떨어져 있고, 정확히 삼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그 작은 삼각형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이 삼각형 안에 매우 아름다운 그러나 동시에 매우 비극적인 마애불이 하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자면 부엉이 바위의 바로 아래입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마애불은 어찌된 일인지 발견 당시부터 옆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천년이 넘는 세월을 쓰러져 있었으니 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로 저 마애불이 똑바로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것이지요.
벚꽃이 흩날리던 지난 봄의 어느 날, 경남 김해로 내려가 봉화산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 봉화산 마애불을 만나러 간 거지요. 노무현 생가를 둘러보고, 노무현 묘역에 참배한 다음,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이 마애불을 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 미륵이 노무현이야. 저 미륵이 천년 동안 저렇게 쓰러져 있다가 벌떡 일어났는데, 그게 노무현 대통령으로 환생한 거야. 노대통령은 죽어서 다시 저렇게 쓰러진 미륵이 되어 있는 거고.” 봉하마을 사람들 그리고 노사모 사람들의 일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최근 수년 동안 저는 전국의 마애불 혹은 미륵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웬만한 마애불이나 미륵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스토리들 중에서 이 노무현 미륵의 스토리텔링만큼 제 마음을 저미게 한 것은 없었습니다. 어떤 뜻에서 노무현은 우리 민중 전래의 미륵신앙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시당하고 박해당하고 쓰러져 있던 미륵이 벌떡 일어선 것이 노무현이라니. 그 노무현이 죽어 다시 저 봉화산 기슭의 바위들 틈에 낀 채로 쓰러져 있다니. 이런 종류의 설화 혹은 스토리텔링은,그 진위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동시대 민중의 삶과 그들의 비원(悲願)을 확연히 드러내는 법입니다. 봉화산 마애불은 ‘쓰러진 민중의 꿈’입니다. 저는 그 ‘쓰러진 노무현’으로부터 발길을 돌리지 못해 오랫동안 그곳을 서성거렸습니다.
이제 내일(2016년 5월 23일)이면 노무현 7주기가 되는군요. 그 역시 여느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공과(功過)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過)보다는 공(功)이 훨씬 큰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 타파, 국토균형발전, 그리고 권위주의를 걷어낸 민주주의의 실현 등은 그의 가장 큰 공입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거의 유신시대로 후퇴해버린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때문일까요? 요즈음 들어 부쩍 그의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노무현 7주기를 맞아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쓰러졌다 일어섰다 다시 쓰러져버린 저 미륵. 우리 살아생전에 다시 저 미륵이 벌떡 일어나 새 세상을 여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봉하마을의 개념도입니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부엉이 바위의 모습입니다
부엉이 바위의 위쪽입니다. 현재 접근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본 노무현 묘역입니다
봉화산에는 노무현이 즐겨 걷던 산책로가 사방으로 나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묘역의 전경입니다. 저 뒤에 보이는 바위는 사자바위입니다.
노무현의 유언에 따라 낮은 돌에 새겨놓은 그의 묘비명입니다
예전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노무현은 국립묘지를 마다하고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했을까?"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역대 대통령들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렇게 홀로 있고 싶어했을까?"
그런데 결과적으로...봉하마을에 따로 묘역을 조성한 것이 잘한 일이지 싶다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에는 언제나 참배객들이 줄을 잇는다
만약 국립묘지에 묻혔다면...과연 이렇게 됐을까?
김대중 전대통령을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들이 김대중의 기일에 맞추어 국립묘지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노무현은 결국 죽어서도...국민들 곁에, 서민들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